이장욱(45)의 은 강한 흡착판을 가진 소설이다. 표제부터 각 장의 소제목, 서사의 주요 에피소드와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소설의 많은 부분을 짐 자무시나 로베르토 로셀리니, 잉마르 베리만 같은 거장 감독들의 영화에서 빌어온 이 작품은 아마도 한국 소설이 영화와 맺을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소설일 테지만, 영화에 별다른 애호가 없어도 이 소설에 빨려 들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사와 인물, 문체가 총체적으로 가동하며 발생시키는 낯설고도 기묘한 긴장 때문이다.
2000년대 한국 시단 최고의 이슈였던 미래파 논쟁을 주도한 평론가이자 그 자신 미래파에 속하는 시인이기도 하며, 러시아문학 연구자이자 소설가인 이씨는 어느 하나에 방점을 찍기 어려운 균등한 재능 분배와 각 분야에서의 높고 고른 성취로 많은 이들을 낙담시켜온 작가다. 은, 소설가로 한정해 말하자면, 그가 첫 소설집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장편으로는 두 번째 작품이다.
소설은 정과 김, 최, 세 사람이 번갈아 1인칭 서술을 이어가다가 마지막 장에서 등장하는 염의 서술로 마무리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서른 세 살인 정과 김, 최, 염은 모두 "언제나 와전 중인 소문 같았던" A의 대학 친구들이며, 그들은 A의 갑작스런 부음을 듣고 한밤중 빈소가 있는 K시로 가는 길이다. 동화 작가인 정은 금융맨인 김의 아내이며, 김은 이 그룹에서 정의 유일한 여자친구인 A와 내연의 관계다. 시간강사에서 여당 중진의원 보좌관으로 변신을 앞둔 사회학 박사 최 또한 자각하지 못한 상태로 A를 사랑하고 있으며, 김은 그의 사랑을 눈치채고 있으나 자신과 A의 관계를 아내인 정이 알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어쨌거나 친구인 이들은 A가 찍은 단편영화의 시사회를 겸해 이틀 전 모임을 가졌고, '천국보다 낯선'이란 제목이 달린 그 영화가 A의 자살 예고였음은 이후 드러난다.
여러 명의 서술자를 통해 찰나적 사건마저 다면적으로 묘사하는 이 소설은 외형적으로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김의 인피티니 승용차에 함께 탄 정과 최가 K시를 향해 달리며 겪는 이상한 교통사고-신고가 먼저 있고 사건이 나중에 벌어지는-와 죽은 A로부터 계속되는 문자메시지 등은 호러의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지만, 이 기괴한 분위기 속에서 독자의 마음을 움켜잡는 것은 각각의 인물들이 토로하는 '나'는 누구인가의 질문에 대한 저마다의 진술이다.
정은 "거의 완전한 수동성의 삶"을 원하는,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약동을, 어떤 희구를, 어떤 그리움을, 불편해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반면 "직선적인 세계를, 회의 없는 세계를 부러워하는" 김은 "안타깝게도 사랑이 세계의 진실을 알려 주지는 않는다. 세계의 진실이란 밤처럼 냉정한 것이다"라고 믿는다. "세계가 문득 낯설어지고 증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비약하는 시의 세계에 동의할 수 없"는 최는 A의 죽음 앞에서도 "애도란 삶을 지속하기 위해 수행하는 인간의 제도에 불과"하므로 "나는 애도하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자아의 탐구에 매몰돼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인물들에게선 몽테뉴적 전통이 흐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이 인물들에게-속악한 인물에게까지- 설득되고 만다.
일생이 묘연했던 A의 연출로 촉발된 이들의 로드무비는 가차없이 읽는 이를 빨아들인다. 구성은 치밀하고 문장은 아름답다. 당대적 감각은 곳곳에서 빛난다. 여러 겹으로 메타적인 이 소설의 마지막 반전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홀연한 해방감을 느껴야 할 독자들에게 다시 읽기의 책무를 부여할 것이다. 그것은, 그러나, 기껍다. 이토록 매혹적으로 피곤한 소설이라니.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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