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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 전 상서 "이대로 당신의 철없는 며느리로 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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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 전 상서 "이대로 당신의 철없는 며느리로 남고 싶어요"

입력
2013.12.2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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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마음 뜸뿍 담긴 편지 한 통으로 한 해 마무리시어머니와 함께한 아름다운 동행 7년…며느리 건강·출산·양육부터 걱정 '시월드'는 남의 일"먼저 배려하시는 어머님… 시댁가는 주말이 즐거워요"

포스코 냉연부에서 일하는 최현주(40ㆍ여) 씨는 편지 한 통으로 올해를 마무리했다.

"누구나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원하지만,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평생을 그렇게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는 '시어머님 전 상서'.

요즘 세상이 너무 솔직한지, 철없는지, '쿨'한지는 알 수 없지만 '적성국가'만큼 멀리한다는 '시월드'를 향해 현주 씨가 쓴 편지는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얼마 전 시어머니 생신 때 용돈을 넣은 봉투에 짧게 쓴 감사의 편지를 함께 넣어 뒀던 것.

시어머니(64)는 봉투 속에서 뒤늦게 현주 씨의 쪽지를 발견했다. 처음 받아본 며느리의 편지가 고맙고 대견했다. 늦게 본 것이 미안하기도 한 시어머니는 며느리 회사 전화번호를 찾았다.

결혼 7년차인 현주 씨는 그동안 회사 사무실에서는 한 번도 받은 적 없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는 순간, 무슨 일일까 가슴이 덜컥 했다. "아가, 지난번 생일 때 준 편지를 인자(이제) 봤지 뭐꼬." 짧은 순간 불안과 안도를 오간 현주 씨. 늘 듣던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왠지 새로웠다. "고마버서(고마워서) 오늘 일하다 말고 계속 읽고 또 읽고 했다 아이가. 나도 사랑한데이."

며느리를 안방으로 떠미는 시어머니

이 얘기를 하러 전화를 하셨다니. 길지 않은 통화를 끝내고 전화기를 내려놓자 새댁으로 살아온 지난 기억들이 몰려 왔다. 시어머니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그녀를 짠하게 했다. 그날 퇴근 후 현주 씨는 지난 7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 시어머니에게 두 번째 편지를 썼다.

"어머님, 며느리라는 이름을 달고 첫 명절을 맞이하던 날, 이른 새벽부터 한복으로 갈아입고 부엌으로 나갔더니 어머님께서는 언제 나오셨는지 음식들을 벌써 거의 다 해놓으셨지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시골집 찬 기운에 손발을 비비며 어머님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는 제가 딱해 보였던 것이지요."

미운 마음, 고운 마음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데,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는 며느리를 시어머니는 처음부터 고운 눈으로 보았다. 시집에서 맞이하는 첫 명절날 새벽 "차례상 다 준비했어, 잠시라도 들어가 쉬어라"는 시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현주 씨는 그녀의 행복한 시집살이가 이미 시작됐다는 것을 실감했다.

"며느리가 힘들까 싶어서 그 전날 벌써 음식을 다 준비해두셨던 거지요. 그렇게 음식 준비도 상차림도 어머님께서 다 하셨는데도, 차례 후 설거지를 하려는 저의 뒤에 슬며시 다가와 싱긋 웃으면서 '남의 조상 챙기느라 고생했다'며 따뜻하게 말씀하셨지요.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가스불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부침개를 부치고 계시는 모습이 힘들어 보여서 한번은 '어머님, 이제 이 정도는 제가 할 수 있어요' 하며 거들려고 나섰는데, '아이고, 이렇게 앉아 있으면 허리 아파서 안돼' 하고는 저를 안방으로 떠밀며 이거나 다듬으라고 콩나물 한 소쿠리를 안겨 주셨지요."

"인자 내 맘 알겠제" 하며 웃어주시길

그 콩나물을 다듬으며 어찌나 마음이 짠하던지 콩나물 다듬는 그녀의 눈에 내내 눈물이 어렸다. "저렇게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다리도 저리고 허리도 아플 텐데 허리디스크로 병원 다니는 며느리 걱정에 수고로움을 떠안으신 어머님, 벌써 어머님과 함께 한 7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처음에는 '잘 몰라서', 그 후에는 '아기가 생겨서', 그 다음에는 '아기가 어려서'라는 적당한 변명거리를 오히려 제게 만들어 주시며, 직장 일하는 며느리 힘들까 항상 먼저 배려해주신 어머님, 덕분에 저는 여느 며느리들과는 달리 주말마다 시댁이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켜켜이 쌓이는 세월만큼 저도 어머님도 변해 가겠지만 저는 언제나 어머님의 철없는 며느리이지 않을까, 아니 이대로 철없는 며느리로 남고 싶은가 봅니다."

당신께 받은 사랑을 자식 낳고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현주 씨는 '막내만 장가보내면 할 일 다 했으니 그만 가야지' 하는 시어머니의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훗날 제가 저보다 더 철없는 며느리를 맞이할 때쯤에야 어머님의 사랑을 마저 헤아릴 수 있겠지요. 그럴 때 '인자 내 맘 알겠제' 하시며 싱긋 웃어주실는지요. 그때까지 오래도록 제 곁에 계셔 주세요."

그녀의 편지 속에는 두 사람의 아름다운 2013년이 들어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서로 아름다운 또 다른 7년이 콩나물처럼 자란다.

이정훈기자 jhlee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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