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 축소 및 은폐를 지시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및 직권남용)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26일 징역 4년을 구형했다. 8월 첫 공판 이후 5개월 가량 진행된 공판은 내년 2월 6일 선고만 남겨두게 됐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이범균)의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이 수도 서울의 치안 책임자로서 직권을 남용해 허위 수사발표를 강행했다"며 "이는 민주주의 근간을 부정하는 중대한 범죄로 역사에서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공직선거법은 '공무원은 그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돼 있는데, 경찰의 국정원 수사 축소와 허위 수사결과 발표를 '선거운동'으로 볼 수 있는지가 최대 쟁점이다. 검찰은 김 전 청장이 지위를 이용해 디지털 증거 분석 및 중간수사결과 발표 과정에서 부당한 지시를 내렸고, 이는 선거운동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청장은 지난해 12월 14일 오후 이병하 서울청 수사과장으로부터 수기보고서를 통해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컴퓨터에서 다수의 아이디ㆍ닉네임과 찬반클릭 활동 내역이 발견됐다는 보고를 받고도 수사상 보안을 이유로 수서경찰서 수사팀에 공유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또 당시 서울청으로부터 이와 관련한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김기용 전 경찰청장의 법정 증언 등을 근거로 김용판 전 청장이 허위 중간수사결과발표를 강행했으며, 이는 대선 개입을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 전 청장 측은 "경찰청장의 승인을 받았으며 결과가 나오는 즉시 발표한다는 방침의 공감대가 경찰 내에 형성돼 있었다"고 맞섰다. 또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앞서 서울청의 분석 결과를 수서서 수사팀에 바로 제공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비전문가로서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했으며 직원 자율에 맡기는 업무 스타일상 수사팀에 대한 업무협조 지시를 따로 하지 않은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이 고의적으로 국정원 김씨가 임의 제출한 노트북과 데스크톱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는지도 주요 쟁점이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13일 "지난 10월 이후 문재인ㆍ박근혜 후보에 대한 비방ㆍ지지 댓글 및 게시글 관련 전자정보에 한해 임의제출에 동의한다"며 증거분석 범위를 제한하는 의견을 달아 노트북 등을 경찰에 제공했다.
검찰은 "임의제출 서류의 '처분의견'란은 제출한 물건에 대한 소유권 포기 여부 등을 기재하는 것이지 제출자가 임의로 압수 범위를 적는 공간이 아니다"라며 "수사기관은 이를 참고할 뿐 기속력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분석 범위 제한 논의는 12월 15일 이병하 수사과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처음 나온 아이디어로 사실 은폐를 위한 허구적 논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 전 청장 측은 '저장매체에 대해 범죄혐의 관련성이 없이 임의로 압수하는 것은 영장주의에 반하는 위법한 압수수색'이라는 대법원의 판례를 근거로 김씨가 조건을 단 분석범위는 지켜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김 전 청장의 변호인은 "임판준, 김수미 분석관이 해당 대법원 사건에 관여한 적이 있어 판례 취지에 따라 분석하자는 의견이 분석팀 내에서 나왔다"며 "당시 민주당의 고발 취지나 언론의 보도 초점 역시 김씨가 10월 이후 문재인ㆍ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ㆍ비방 글을 작성했는지 여부였다"고 반박했다.
김 전 청장은 이날 최후진술을 통해 "짜맞추기식 수사ㆍ기소 때문에 평소 존경했던 검찰에 실망하게 됐다. 진실은 결국 밝혀진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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