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숙청 이후 대남 위협 수위를 끌어 올리고 있다. 정부는 김정은 체제에 쏟아지는 시선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전술로 보고 대응 수위를 고심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7개항의 공개 질문을 던졌다. 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신뢰와 대결 중 최후의 선택을 하라"는 질의 형식을 취했지만, 내용은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보다 더 추악한 사대 매국노 정권" "선친의 비극을 잊지 말아야 한다" 등 인신공격으로 가득 채워졌다.
조선중앙통신은 같은 날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말을 빌려 "전쟁은 언제 한다고 광고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며 전쟁을 직접 언급했다. 앞서 19일엔 국방위 정책국 서기실이 "가차없는 보복행동이 예고없이 무자비하게 가해질 것"이라고 했고, 북한 정권의 2인자로 부상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도 16일 군 충성맹세모임에서 "침략의 본거지들을 모조리 타격해 버리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정부는 26일 박수진 통일부 부대변인을 내세워 "(북한이) 이렇게 무례한 질문을 하는 것은 혼란스러운 내부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조평통 공개질문장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북한의 주요 발표에 통일부 부대변인을 대응 주체로 명시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앞서 박 대통령이 24일 강원도 최전방 초소를 방문해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단호하고 가차없이 대응해야 한다"고 밝히고,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17일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 "(북한이) 도발하면 가차없이 응징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점검하라"며 강력 대응하던 것과도 다른 차원이다.
통일부는 이에 대해 "북한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차원에서 부대변인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으나, 속내는 북한의 의도에 휘말릴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는 내용까지 정부의 격을 높여 입장을 발표할 경우 오히려 북한이 상황을 오판할 수 있다"며 "사안의 중요도에 따라 대응 주체를 조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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