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26일 주일미국대사관을 통해 "일본은 미국의 소중한 동맹이자 우방"이라며 그러나 "일본이 이웃국가들과의 긴장을 악화시킬 행위를 한 것에 실망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이어 "일본과 이웃국가들이 민감한 과거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평화와 안정을 위해 협력을 강화하는 건설적인 길을 찾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외교 용어상 비판 수위가 높은 '실망'이란 표현을 쓴 것은 아베 총리의 참배를 심각한 사태로 판단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지금까지 미국 입장은 역사문제가 미국의 최대 아시아 동맹인 일본을 고립시킬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는 선에 머물렀다. 아베 총리의 참배 약 5시간 뒤 일본대사관을 통해 성명이 나온 것은 참배가 미국 현지시간으로 크리스마스 휴일 밤에 이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에 주변국과의 화해를 주문해온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아베 총리의 참배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미국은 아베 총리가 지난 1년 동안 야스쿠니 참배를 자제한 것이 주변국에 성의를 표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이 일본 방문 때 과거사 문제 해결을 독려한 지 1개월도 지나지 않아 참배가 이뤄진 것도 오바마 정부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 언론들이 아베 총리의 참배를 일제히 비판하고 나선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일본 도쿄 소재 MIT 국제학센터의 마이클 쿠세크 연구원은 "아베 총리가 동북아국가들의 협력을 추진해온 사람들의 얼굴을 찰싹 때렸다"며 "그의 행위는 '나는 (협력에)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미국의소리방송(VOA)에 말했다. 시사주간 타임은 '매파 일본총리 전범위패 모신 신사방문'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참배가 동북아 지정학적 상황이 민감한 때 이뤄졌다"며 "새해 동북아 긴장이 완화할 것이란 기대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일관계가 조만간 개선될 것이란 희망이 단숨에 사라졌다"며 특히 "아베 총리의 참배는 박근혜 대통령이 그간 한일관계 개선을 거부해온 것을 정당화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한국에서 박 대통령이 과거사 문제를 이유로 관계개선을 반대한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시점에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에게 구명밧줄을 던졌다"고 평했다. 워싱턴포스트와 보수적인 폭스뉴스도 아베 총리의 신사참배가 중국의 분노를 살 것이란 기사를 전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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