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과학상식 가운데 '관성의 법칙'이 있다.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운동하려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한다는 단순한 내용이다. 버스가 급히 서려 하면 승객의 몸이 앞쪽으로 크게 쏠리고, 급히 출발하려는 순간에는 뒤쪽으로 쏠리는 게 알기 쉬운 예다. 버스가 움직이는 동안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버스가 서 있는 동안에는 계속 서 있으려는 승객의 관성이 앞뒤로 몸이 크게 흔들리는 현상을 잘 설명해 준다.
■ 관성의 법칙은 사회에도 끊임없이 작용한다. 어느 개인이나 집단의 인식과 태도는 좀처럼 바뀌기 어렵고, 그 집합인 사회 전체의 인식과 태도도 마찬가지다. 물론 긍정적 측면도 있다. 오랜 역사경험 위에 성립된 전통과 관습은 충분히 존중할 가치가 있고, 사회안정에 기여한다. 이런 사회적 관성은 흔히 말하는 보수파의 고유한 속성으로 여기기 쉽지만 진보파라고 예외가 아니다. 멈추거나 방향을 틀어야 할 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또한 관성 때문이다.
■ 관성적 태도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에 대한 과소 평가나 매몰비용(Sunk Cost)에 대한 몰이해와 서로 얽혀있다. 정(靜)에서 동(動)으로의 변화나 그 역의 변화를 꺼리는 집단의식은 변화하지 않을 때 치러야 할 비용이 오히려 작다는 판단의 결과다. 아울러 변화를 택하는 순간 곧바로 털어야 할 매몰비용을 '이연(移延) 비용'으로 여기는 자세도 두드러진다. '그 동안 들인 공이 얼만데' 하는 마음으로는 변화의 실익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
■ 관성의 법칙에서 빠뜨려서는 안 될 게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이란 전제다. 개인의 관성은 주위의 호된 질책이나 충격적 환경 변화에 의해 깨어질 수 있다. 철도파업 사태가 상징적으로 드러낸 정부와 철도노조의 대결이나 여야 정치권의 관성은 침묵해 온 다수 국민의 힘이 작용해야 변화를 기약할 만하다. 끊임없는 시간의 흐름에 일부러 경계선을 긋고 새해 결심으로 변화를 기약하듯, 을씨년스러운 세모(歲暮) 분위기도 새해에는 일변하길 바란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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