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지구촌에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찾아왔다. 말구유라는 낮은 자리에서 태어나 인류를 위한 도저한 사랑을 실천한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행사가 예식처럼 또는 축제처럼 도처에서 치러졌다.
근래 최대 인파 모인 베들레헴
성탄절 전날인 24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예수 탄생지 베들레헴은 수쳔명의 순례객으로 붐볐다. 대형 트리가 불을 밝힌 도심 구유광장에서는 상가들이 문을 닫은 경건한 분위기 속에 기악대가 찬송가를 연주했다. 미국 뉴욕에서 가족과 처음 베들레헴을 찾은 윌 그린은 “가정, 학교, 교회에서 예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베들레헴은 내 인생의 일부와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AP통신은 올해 베들레헴 방문객이 2000년대 들어 최고 수준이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 재개에 따른 현상으로 분석했다.
순례자들은 광장 인근 예수 탄생지로 추정되는 곳에 세워진 예수탄생교회에서 성탄 미사를 드렸다. 이스라엘이 성탄절을 맞아 개방한 분리장벽의 문을 거쳐 교회까지 성탄 축하 행렬을 이끈 트왈 예루살렘 총대주교는 미사를 집전하며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 파괴, 증오, 인종주의를 잊어서는 안된다”며 “긍정적 마음으로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한다면 평화가 도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사에는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캐서린 애슈턴 유럽연합 외교안보 고위대표, 나세르 주데 요르단 외무장관 등이 참석했다.
가톨릭 신자가 많은 필리핀의 태풍 피해 지역도 성탄의 기쁨을 누렸다. 최대 피해지인 타클로반 주민들은 복구된 전력으로 거리 곳곳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하며 축제 분위기를 조성했다. 24일에는 교황 사절로 파견된 주세페 핀토 대주교가 시내 이재민 수용시설을 찾아 위로의 뜻을 전했다. 인근 팔로시(市)에서는 코코넛 나무와 방수천으로 급조된 임시 성당에서 성탄 미사가 진행됐다.
스노든 “프라이버시 수호” 성탄메시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등 명사들은 지구촌에 성탄 메시지를 전했다. 메시지를 전한 인사 중에는 미국 정보기관의 무차별 첩보 행위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도 포함됐다. 러시아에 망명 중인 스노든은 영국 공영방송 채널4를 통해 발표한 동영상 메시지에서 “오늘날 개인에 대한 감시 수단은 조지 오웰(소설 의 작가)의 경고를 뛰어넘는 수준”이라며 “갓 태어난 아이들이 프라이버시의 개념도 모른 채 성장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는 자신의 폭로가 첨단 기술을 규제하는 정부 권력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 “함께 노력하면 정부의 무차별 감시를 끝낼 수 있다”고 관심을 촉구했다.
다음달 취임하는 빌 드 블라지오 미국 뉴욕시장 당선자의 딸 키아라도 성탄절을 맞아 특별한 고백을 했다. 올해 19세인 키아라는 24일 유튜브에 게시한 동영상에서 “사춘기 내내 우울증을 앓으면서 대마초를 피우거나 술을 마셨다”며 “처음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큰 문제가 됐다”고 밝혔다. 부모의 헌신 속에 치료를 받고 부친의 선거운동에도 동참할 수 있었다는 그는 “술ㆍ마약 중독이 질병이란 점을 인정하고 솔직히 밝혀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우울한 성탄절 맞은 곳도
서유럽은 악천후로 근심 많은 성탄절을 보냈다. 23일부터 폭풍우 영향권이 든 영국은 홍수, 빗길 교통사고 등으로 5명이 숨지고 15만 가구 이상이 정전되는 피해를 입었다. 프랑스에서도 러시아 국적 화물선 선원 1명이 바다에 빠져 실종됐다. 성탄절 연휴를 즐기려던 여행객들은 주요 철도망이 마비되고 항공편 취소가 잇따르면서 휴가를 망쳤다. 런던 개트윅공항은 24일 기상 악화에 터미널 정전사고까지 겹쳐 결항이 속출, 수백명이 대체 항공편을 기다리며 발이 묶였다. 인근 히스로공항도 이날 유럽으로 가는 30개 노선 항공편이 취소됐다. 영불해협을 왕복하는 페리 운행도 전면 취소됐다.
중국은 성탄 전날도 스모그에 휩싸였다. 베이징(北京)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24일 오전 세계보건기구 기준치의 18배까지 치솟은 것을 비롯해 허베이(河北), 산시(山西), 산둥(山東), 허난(河南), 산시(陝西), 장쑤(江蘇)성 등 동부 일대에 25일 오전까지 짙은 스모그가 나타났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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