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지번이 들어간 주소 대신 도로명과 건물번호로 구성된 '도로명 주소'가 새해부터 시행된다. 1910년 한일합방과 동시에 일제가 토지조사 사업을 벌이며 부여한 지번체계가 100여 년 만에 바뀌는 것이다. 정부는 96년 행정동과 법정동의 불일치와 지번의 연속성 결여 등의 문제점에 따라 도로명 주소로 전환을 결정했다. 2006년 관련 법률 공포에 이어 작년 1월 시행하려다 홍보 부족 등으로 인한 혼란을 감안, 2년 유예기간을 두었던 것이다.
■ 정부는 그간 도로 번호판 설치 및 대국민 홍보비 등에 총 3,907억 원을 쏟아 부었지만 완전 정착까지는 갈 길이 멀다. 기존 주소는 사용할 수 없는지, 신분증을 재발급해야 하는지, 거래 은행에 새 주소를 신고해야 하는지 등등,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걱정부터 앞세울 필요는 없다. 당분간 기존 주소를 병기하는 데다, 이전 주소를 써도 과태료 부담 등도 전혀 없다. 궁금한 점은 정부가 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www.juso.go.kr)를 참고하면 된다.
■ 물론 상당수 사람들이 새 주소 시행에 대해 '구태여 왜 바꾸려 하느냐'는 볼멘소리를 낸다. 오랫동안 몸에 익은 시스템을 한 순간에 바꾸려니 적잖은 짜증이 나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하지만 전면 시행을 앞둔 시점에서 제도 도입의 찬반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정부에 따르면 이 제도의 정착 시 연간 3조4,000억 원의 경제적 이익 효과가 발생한다고 한다. 정부도 더욱 힘써야 하지만 국민도 새 주소를 익히기 위해 노력해보자.
■ 다만 앞으로 '○○동'대신 '△△대로(길이나 로)' 등으로 쓰여지다 보니 역사적 유래가 담긴 고유 지명이 점차 사라질 위기란 점이 아쉽다. 왕십리(往十里)는 조선 왕궁 터 선정을 놓고 무학대사의 일화가 얽힌 지명이고, 군자동(君子洞)은 왕비가 옥동자를 낳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회현동(會賢洞)은 어진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고 해서, 용두동(龍頭洞)은 산 모습이 용 머리처럼 생겼다는 데에서 유래됐다. 정겨운 지명과의 헤어짐은 자못 서글프다.
염영남 논설위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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