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혹한 심판이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일인지 나는 모르겠어요.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요."
최근에 인상적으로 본 공연에 나왔던 대사 중 일부이다. 극 중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외쳤다. 모두의 행복을 위해 인간들은 대립하고 심지어 서로 죽이기까지 하는데 그런 싸움이 도무지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 그는 혼란스러워했다. 그에게는 세상의 모든 일들이 공포였다.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은 깜깜한 안갯속이었고 한 치도 볼 수 없는 막막함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의 행복을 볼모로 다른 사람들을 탄압하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남자는 안갯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타인들의 모습을 직접 볼 수도 없었다. 다만 그들의 외침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절규하고 있는지 들을 수만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세히 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계속 높아지는 사람들의 외침을 들을 수밖에 없는 그의 세계에서 그가 느끼는 공포는 끔찍함을 넘어 참담하기까지 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그의 공포는 그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이 두렵기만 하다.
지난 22일 일요일 오전 6,000명의 경찰이 민주노총의 사무실이 있는 정동 경향신문사 사옥에 집결했다. 이내 경찰과 소방대원들은 로비로 연결되는 자동문을 깨고 15층 민주노총 사무실 천장을 뜯고 올라갔다. 경찰은 로비에서 격렬하게 저항하던 노조원들에게 최루 가스를 뿌렸고, 삽시간에 100명이 넘는 노조원들을 연행했다. 현장은 최루 가스를 맞은 노조원들의 절규와 눈물 콧물을 쏟으며 경찰에게 연행되어 가는 노조원들의 모습으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그 광경은 너무 참담했고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일 뿐이었다. 민주노총 창립 이래 최초로 공권력에 일종의 폭행을 당한 사건 앞에서 정부는 또 한 번 익숙한 얼굴로 국민 앞에 섰다. '모든 것이 국민을 위한 일이다.' 정부는 그렇게 말했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 매를 들다 보면 좀 많이 팰 수도 있는 것 아니냐 하는 표정이었다. 소통과 불통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처럼 보였다. 그런 정부에 묻고 싶었다. 그렇게 입에 마르도록 위하는 국민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기는 하느냐고. 정부는 국민을 핑계로 언론 플레이에만 매달리고 있다. 정부가 언론 플레이를 시작하면 진영논리가 시작되게 된다. 상황의 진실보다는 잘잘못을 가리기 바빠지는 것이다. 싸우다 보면 또 이번 사안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슬슬 없어지겠지 생각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국민들이 갖고 있는 애국심과 가족에 대한 사랑, 사회에 대한 배려 등을 믿고 있다. 모든 문제를 국민중심으로 풀어가야 한다."
지난 23일 박근혜 대통령은 이같이 말했다. 대통령은 민영화 논란에 대해 정부는 특히 절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노조는 민영화를 빌미로 파업을 벌이는 제 밥그릇 지키기라고 선을 그었다. 정부는 국민을 위해 불법 파업을 종식시키겠다고 강하게 나서고 있다. 청와대에 묻고 싶다. 도대체 국민은, 대통령이 생각하는 국민은 어디에 있는지. 불통이라는 말에 소통의 다른 방법이라고 말하는 정부가 과연 진짜 소통이라는 단어가 가진 뜻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정부는 확실히 설명해야 한다. 청와대는 국민을 꼭 유치원생 대하듯 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은 다 너희를 위해서 하는 일이니 힘없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라.' 그런데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모든 독재자의 논리는 다 같다는 것을. 시민을 성숙한 대상으로 보지 않고 무지한 자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바로 계몽과 독재는 한 끝 차이라는 것을.
2013년도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다. 나는 다가오는 2014년이 공포스럽다. 한 남자의 외침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친구, 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두렵기만 하다.'
천정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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