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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사토크]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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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사토크]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

입력
2013.12.24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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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입문해 총선 치를 때 유권자들 날 후보 부인으로 착각대한민국에서 여성 정치인들은 주홍글씨를 새기고 사는 것 같아민간기업도 고위직 여성비율 저조… 육아·보육 부분 획기적 대책 절실여성 정치인에게도 '아내' 필요… 지방정치에선 女리더십 더 요구공천제 폐지는 여성 정치인을 배제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스웨덴처럼 국민지지 반영해 비례대표 순번 정하는 案 검토를

첫 여성 대통령이 당선된 지 1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여성의 지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여성의 고위직 진출 저조 등으로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10월 발표한 한국의 성 평등 순위는 136개국 중 111위로 매우 저조했다. 2012년(108위)보다도 더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와 진보 진영에서 각각 활약하는 이혜훈(49) 새누리당 최고위원과 심상정(54) 정의당 원내대표에게 여성 정치인의 어려움을 들어봤다.'여성의 정치ㆍ사회 참여와 지방선거'를 주제로 열린 대담은 2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두 사람은 "남성 정치인들은 아내가 살림하면서 지역구 활동까지 분담해 주지만 여성 정치인은 혼자 모든 일을 해야 하니 너무 힘들다"면서 "여성 정치인에게도 아내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유리 천장을 깨기 위해서는 제도적 대책을 마련하고 남성 중심 문화를 개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이 최고위원은 등산복을 입고 직장 모임에 참석했다가 급히 병원으로 실려가 출산했던 경험을 얘기하면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심 원내대표는 "여성 대통령 시대이지만 여성은 없다"면서 여성들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대거 진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여성 정치인의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이 많다. 그런 벽을 뚫고 국회의원이 된 뒷얘기를 듣고 싶다.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하면서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정책 자문을 했었다. 당시 국회의원들은 만나기 어렵고 전문성, 개혁 의지가 약한 사람들이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대선자금 '차떼기' 사건과 탄핵 등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당시 당 지도부는 천막 당사를 만들어 사죄하는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일부 지역에 전략 공천을 하기로 했다. 한나라당을 싫어하는 젊은 여성층을 공략하기 위해 여성 경제통을 찾았던 것 같다. 당 관계자가 "서울 서초갑에 전략 공천을 줄 테니 출마하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정책 자문의 한계를 느끼던 상황에서 그 같은 제의를 받고 고민한 뒤 뛰어들었다. 정치권에 처음 들어올 때는 민정당, 민자당, 민중당 등이 어떤 당인지도 몰랐다. 상당수 유권자들이 나를 후보 부인으로 착각하고 "후보는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더라. 어떤 여성 유권자는 "여자야! 재수 없게"라고 말해 충격을 받았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 교육자가 되고 싶어서 1978년 사범대에 들어 갔다. 당시는 독재정치의 막바지 시대였고, 사회와 역사에 대한 지식인의 사명이 부각되던 시기였다. 교육자가 되려던 꿈은 역사의 물줄기를 따라 사회 운동으로 바뀌었고 결국 25년 동안 노동운동을 하게 됐다. 성실하게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정치ㆍ사회적으로 권리가 없는 것을 지켜보면서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는 사회가 돼야 미래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비판과 촉구만 하는 지위로는 변화시킬 수 있는 게 거의 없으므로 권력을 선용하는 것이 효과적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정책과 예산의 우선 순위만 바꿔도 젊은이와 워킹맘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으므로 정치야말로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마침 진보정당을 출범시키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 출마를 적극 권했다. 당원 직선으로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했는데 득표 순에 따라 후보 1번이 됐다.

-여성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

심= 진보정당은 성 평등 문제에서 실천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당내에서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국회는 달랐다. 처음 당선되니까 국회에서 남성용 007가방과 핀으로 뚫는 의원 배지를 줬다. 모든 게 남성에 맞춰져 있다. 여성 비례대표 의원이 늘어나면서 국회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으나 개인적으론 여전히 힘들다. 저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 남성 국회의원들의 경우 부인이 살림해 주고, 아이를 키워줄 뿐 아니라 남편을 대신해 김치 만들기 등 지역구 행사와 경조사에도 참석한다.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없어서 너무 힘들었다.

이= 경쟁자 측에선 남편과 부인이 분담해 지역구 행사에 참여하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우선 순위를 국회, 지역구, 정당 순으로 정해 놓고 움직였는데 그러다 보면 지역구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성이 출마할 경우에는 개인 경쟁력을 따지는데 여성이 나오면 '여자라서 되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전세계에 커리어 우먼이 많은데 그들 중 누가 잘못하면 여성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뒤집어 씌운다. 대한민국에서 여성 정치인으로 산다는 건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기고 사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뿐 아니라 고위공직자, 기업 고위직 등에서 여성의 진출이 매우 저조하다.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늘리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이= WEF의 성 격차 지수를 세부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대학 진학률과 평균 수명은 남성과 비교했을 때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교육을 많이 받은 데다 건강하기 때문에 인재로서 대우 받아야 하는데 공공 부문과 민간 기업의 고위직 여성 비율은 매우 저조하고 동일 노동에서의 남녀 임금 격차가 너무 크다. 성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육아 휴직과 보육 시설을 확대하고 고용과 승진에서 차별이 없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잘못된 문화가 더 큰 문제이다. 직장에서 '그러니 여자 뽑지 말랬잖아!'라는 얘기를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다. 내가 연구원에서 일할 때 정기 산행 행사가 있었는데 만삭이 됐는데도 참여해야 했다. 등산복을 입고 도봉산 입구로 갔는데 갑자기 산통이 와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출산했다. 당시 등산복을 입고 배낭을 메고 분만실에 들어가는 나를 보면서'미친 여자'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여성들이 직장 상사로 오는 방법이 성 차별 해소에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여성이 대통령이 되면 많이 바뀔 것이라는 신념을 갖게 됐다.

심= 요즘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에서 여성들이 판치는 세상이 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유리 천장'이 매우 두텁다. 공무원 시험에서 여성 합격자의 비율은 48%에 이르지만 3급 이상 여성 고위공직자는 4.7%(2010년)에 불과하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85%를 넘는데 여성 경제활동인구는 49%에 불과하다. 조사 결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대학을 졸업해서 고임금을 받는 30대 미혼 여성으로 나왔다. 그러나 결혼하고 출산하면 불행해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막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이번에 국회 환경노동위가 육아 휴직 대상을 6세에서 8세로 높이기로 결정했는데, 육아 부분에서 획기적 대책이 필요하다. 또 임금과 승진 문제에서 차별이 없도록 적극적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의 첫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을 평가한다면.

심=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닮으려고 했는데 취임 이후에는 영국의 대처 전 총리를 닮아가고 있다. 좌파 공약을 빌어다가 중도층을 불러들여 당선된 것은 메르켈과 유사하다. 메르켈은 사민당을 찾아가 17시간 동안 토론해서 최저임금제를 받아들이고 연정 구성을 마무리했다. 여성 리더십의 주요 특징으로 대화와 소통, 따뜻하게 돌보는 생활 정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수성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최근 박 대통령에 연계된 이미지로는 독선, 불통, 공안통치 등이 거론된다. 또 여성 대통령 시대에 여성이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성 대통령이 등장했는데 여성 장관이 달랑 두 명밖에 없는 게 유감이다.

이= 농경 시대에는 근육으로 상징되는 남성이 중요했으나 현대 사회에서는 감성과 상상력 등에서 강점을 지닌 여성 리더십이 필요하다. 또 여성 지도자의 장점으로 조직과 지역 등과 관련된 패거리 문화와 청탁 문화에서 자유롭고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 거론된다. 이 같은 기대감에서 원칙을 지키려고 하면서 소신 있게 밀고 나가는 여성 대통령의 모습에 보수 애국시민들이 박수 치고 있는 면도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성의 정치 참여를 늘리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말해 달라.

심= 15대 국회 이전까지 3%에도 미치지 못했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현재(19대 국회) 15%에 이르게 된 것은 정당 투표에 의한 비례대표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단체장 등에 대한 정당 공천 폐지를 거론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비례대표 제도를 확대하고 스웨덴처럼 국민 지지를 반영해 개방형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방 정치에서는 여성 리더십이 더욱 돋보일 수 있다. 교육, 환경, 복지, 육아 문제 등이 중요해진 생활정치 시대이기 때문에 감수성을 지니고 경험과 의지를 가진 여성들이 훨씬 잘할 수 있다. 내년은 지방선거에서 여성들이 광역ㆍ기초단체장에 대거 진출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이= 모두 국민의 대표인데 기초의원은 공천해선 안 되고 광역의원과 국회의원, 대통령은 공천하자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공천 과정에 비리와 부패가 있다면 고쳐야지 없애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다. 17대 국회 이후 남녀 동수 비례대표 공천이 정착돼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크게 늘었다. 공천제 폐지는 여성 정치의 싹을 자르겠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여성의 정치 참여를 높이기 위해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여성들이 많이 진출해야 한다.

대담 진행=김광덕 선임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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