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종식에 기여하고도 동성애 때문에 범죄자로 몰린 뒤 자살한 앨런 튜링이 사후 59년 만에 사면됐다.
크리스 그레일링 영국 법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 튜링의 사면을 발표한 뒤 "그의 지대한 공헌과 과학 유산은 기억되고 인정받을 만하다"며 "그가 독일의 암호를 해독해 전쟁을 끝내고 수천명의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스티븐 호킹 등 과학자를 포함한 3만7,404명의 청원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받아들여 특별사면령을 내리면서 성사됐다. 앞서 2009년 영국 정부 관계자로는 처음으로 고든 브라운 당시 총리가 튜링이 받았던 처우에 대해 사과한 바 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해 연합군을 승리로 이끈 튜링은 1954년 41세의 나이에 스스로 삶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였다. 그는 1936년 발표한 논문에서 컴퓨터의 개념적 기초를 확립해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AI)의 창시자로 불린다. 2차 대전 때는 런던 북서부 블레츨리파크에 세워진 암호해독부대에서 '콜로서스'라는 기계식 암호 해독기를 만들어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업적도 그의 불행을 막진 못했다. 그는 당시만해도 범죄자로 취급받던 동성애자였다. 그와 연인 관계였던 한 남성이 그의 집을 털었고 경찰이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동성애 관계가 드러났다. 튜링은 '엄중한 외설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과 화학적 거세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그는 연구를 위해 화학적 거세를 택했지만 기밀문서 열람 자격이 취소되고 정부기관 근무가 금지됐다. 유죄 판결 2년 뒤 그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청산가리를 주사한 사과를 먹고 자살했다. 일각에는 애플이 사과를 먹고 자살한 튜링에 대한 오마주로 사과 로고를 선택했다는 설도 있다.
신정훈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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