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반 찰리 채플린의 영화 에서 주인공이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멍키스패너로 연신 나사를 조이는 공장은 오랫동안 금녀(禁女)의 영역이었다. 특히 건장한 남성들이 3만여개의 부품을 일사불란하게 만들고, 조립하는 자동차 공장에서 여성이 틈입할 자리는 더욱 없었다. 그런데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인 GM이 지난 10일 창립 105년 만에 금기를 깨고, 여성인 메리 바라 글로벌 제품담당 부사장을 CEO로 임명했다.
■ GM의 결단은 뜻밖에도 미 월가의 폐쇄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근육 대신 머리를 많이 쓰고, 여성의 비율도 타 업종에 비해 크게 높은 월가에 오히려 여성 CEO가 전무한 사실이 부각된 것이다. 미 경제주간 포천에 따르면 글로벌 500대 기업리스트에 포함된 20여개 월가의 대형 은행 CEO는 모두 남성이 차지하고 있다. 그것도 이른바 'WASP(백인 앵글로 색슨 신교도)'거나, 유대인 출신이 아니면 CEO는 꿈도 못 꾼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 미국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유럽에 비해 뒤진다. 지난 해 기업 이사회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15%에 그쳐 노르웨이(35%)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100대 기업 여성 CEO 비율도 유럽(7%)의 3분의 1수준(2%)이다. 이사회의 30∼40%를 여성으로 채우는 유럽식 쿼터제도도 없거니와, 개인의 성공은 능력으로 쟁취해야지, 정부나 제도로 밀어줘야 할 사안이 아니라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한 탓이다. 커리어 우먼의 롤모델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는 올 초 자신의 저서 에서 "여성과 남성 사이에는 '야망의 격차'가 존재한다"며 여성들의 분발을 촉구하기도 했다.
■ 한국의 현실은 미국보다 더 열악하다. 주요 대기업은 물론이고, 가장 앞서간다는 삼성조차도 오너가(家) 출신이 아닌 여성 CEO는 아직 없다. 이런 가운데 국책은행이긴 하지만 기업은행장 및 문화재청장에 여성이 잇따라 선임된 건 반가운 소식이다. 이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남녀 간엔 야망의 격차가 없음'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 아닐까.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