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급기야 수서발 고속철도(KTX) 법인을 준정부기관으로 지정하겠다고 나섰다. 대통령까지 나서 민영화 시도가 아니라고 확인했고, 국토교통부장관은 수서발 KTX가 지분을 매각하면 면허를 박탈하는 정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의구심이 가라앉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기업의 비효율성을 개혁하겠다는 당초의 목적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방만한 공공기관(코레일)을 견제한다며 또 다른 공공기관(수서발 법인)을 만들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 경기 과천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공공기관 정상화 워크숍'에서 기자들과 만나 "공공기관 지정요건에 해당되면 기준에 따라 내년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수서발 법인의 준정부기관 지정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수서발 법인=철도 민영화'라는 전국철도노동조합의 주장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계속해서 민영화 의구심 해소를 위한 발언 수위를 높여왔다.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철도 민영화는 하지 않는다"고 말한 데 이어 같은 내용의 정홍원 국무총리 대국민 담화(18일)가 뒤따랐고, 서승환 국토부 장관까지 "지분을 민간에 매각하면 수서발 법인의 철도운송사업자 면허를 박탈하겠다"(21일)고 나섰다.
그러나 이번 수서발 법인을 준정부기관으로 지정한다는 주장은 자가당착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그간 정부가 준정부기관을 개혁대상으로 지목해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11일 내놓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은 공기업 등 준정부기관의 방만경영을 구구절절 질타했다. "공공기관은 고용세습이나 과다한 휴가 등 복리후생 수준이 불합리하다" "사측의 모럴해저드와 맞물려, 민간기업이라면 쉽지 않을 단체협약을 체결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논리적 모순을 무릅쓰면서까지 수서발 법인 설립과 경쟁체제 도입을 관철하려는 것은 결국 철도노조를 분리해 약화시키는 걸 최우선 목표로 삼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수서발 법인 설립뿐만 아니라 올해 6월 정부가 발표한 철도산업발전방안대로 여객, 화물 등 코레일의 사업 분야가 각각 자회사로 나뉜다면 노조가 약화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노조 관계자는 "서울 지하철 운영사가 2개로 나뉘면서 지하철노조의 힘이 빠졌듯 경쟁체제를 도입하면 코레일 노조도 약해질 것"이라며 "공기업이 비효율적이라면서 공기업을 더 만든단 이야기는 앞뒤가 안 맞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토부는 노조를 코레일 개혁의 최대 걸림돌로 보고 있다. 국토부는 코레일 매출의 절반 수준에 달하는 인건비가 강성 노조 탓이라고 설명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강성 노조가 단체협약으로 근무지 및 부서 배치까지 간섭하는 통에 코레일은 적자노선에 과도한 인력을 배치하고 있다"면서 "이런 인사문제를 빼놓고 코레일의 방만경영을 고칠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가 코레일의 방만경영 개혁 방안을 비효율적 인력운용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노조 약화 시도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국토부는 연평균 5,000억원에 이르는 적자와 17조원이 넘는 부채가 코레일의 방만경영 때문이며 해법은 경쟁체제 도입뿐이라고 주장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철도청 시절 산하 지방청이 5개였는데 공사 전환 후 코레일의 지역본부는 한때 17개까지 늘었다"며 "열차가 24시간 운행하는 것도 아닌데 코레일은 태백∙영동선 등 손님이 거의 없는 역에도 역무원을 6~8명씩 둔다"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말 안 듣는 자식(코레일)이 그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 곁에 우등생 친구(수서발 법인)를 붙여서 스스로 잘못을 알고, 고치게 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코레일은 막대한 부채와 적자는 인천공항철도를 매입하고, 손해를 보며 적자노선을 운영하는 공공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방만운영의 모든 책임을 코레일에 떠미는 것은 무리라고 반박한다. 코레일 직원은 "아무리 손님이 없는 역이라도 유지하려면 최소 6명(3교대 인원)이 필요하다"면서 "코레일 정시 운행률과 안전성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이를 두고 방만경영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불만을 표했다. 또 다른 직원은 "적자를 매년 줄이고 있는데, 국토부는 연평균 적자만 발표하며 자구노력을 감추려 한다"면서 "회사 안에선 수서발 KTX를 우리가 운영하면 더 좋겠지만, 최연혜 사장이 당초 정부가 계획한 민영화를 막은 것만 해도 다행이란 의견이 많다"고 귀띔했다.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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