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길, 엘씨디로, 디지털로, 모듈화산업로, 크리스탈로….'
2014년부터 전면 시행되는 도로명 주소와 관련해 일부지역에서는 고유의 동ㆍ리 지명이 사라지고 엉뚱한 외래어가 등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인천 서구는 청라지구의 도로명 주소를 '크리스탈로','사파이어로', '에메랄드로' '루비로' 등 보석 이름을 땄다. 조금은 뜬금없는 도로명이지만 나름 이유는 있다.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도로명 이름을 만들 때는 주민들의 의견을 최종적으로 반영한다"며 "국제도시로서 지역의 특징을 반영해 달라는 요구에 따라 이름 붙여진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웰빙길(전남 진도군 의신면 금감리), 엘씨디로(경기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 디지털로(경기 광명시 철산동), 모듈화산업로(울산광역시 북구 연암동), 크리스탈로(인천광역시 서구 경서동) 등도 비슷한 사례다.
문제는 내년부터 사라지는 동ㆍ리의 법정지명이 전국적으로 4,000∼5,000곳에 이르는데 서울 종로구처럼 조선 초기부터 행정구역명으로 지정돼 500년 넘게 유지돼 온 지명들 마저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종로구 와룡동의 경우 태조 5년(1396년)부터 사용됐으며 '용(왕)이 누워 휴식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와룡동은 '봉황의 날개'라는 뜻의 종묘 옆 봉익동과 짝을 이루며 6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내년부터 이곳은 '종로구 율곡로'일대로 바뀐다. 봉익동 역시 돈화문로로 변경된다.
지난달 인간도시컨센서스와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가 함께 연 '도로명 주소체계의 문제점과 개선과제' 토론회에서 로버트 파우 서울대 교수(국어교육)는 "필라델피아에선 벤저민 프랭클린과 같은 땅 소유주의 이름을 따 거리(주소)의 이름을 지었고, 워싱턴DC는 국회의사당이나 백악관과 같은 주요 건물이나 장소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며 "종로구의 체부동, 누하동, 통인동, 옥인동, 청운동 등의 이름은 조선 시대부터 사용돼 이어져 온 것인데 지명을 바꾸면 역사도 사라지는 것 아닌가"라며 우려를 드러냈다.
이에 대해 배진환 안행부 지방세제정책관은 "새 도로명 주소를 쓰더라도 도로명주소 뒤에 현재 법정동 이름을 병기할 수 있기 때문에 역사성과 전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는 입장이지만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병기한다고 하지만 의무가 아닌 까닭에 결국 동 주소는 없어질 수 있고 결국 도로명주소 사업이 문화적 뿌리까지 뽑아내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