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1일부터 공공기관에 전입ㆍ출생ㆍ혼인 등 각종 신고를 하거나 서류를 제출할 때는 반드시 도로명주소를 사용해야한다. 지난 100여년 간 썼던 지번주소는 이제 토지관리나 부동산계약서에서만 쓰게 된다.
도로명주소는 시ㆍ군ㆍ구와 읍ㆍ면까지는 기존 주소와 같지만 동ㆍ리와 지번 대신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쓴다. 도로 크기에 따라 대로(8차선)ㆍ로(4차선)ㆍ길(2차선)로 나뉜다. 도로 왼쪽 건물에는 홀수, 오른쪽 건물에는 짝수 번호가 붙는다.
1996년부터 3,907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도로명주소의 도입으로 정부는 길 찾기가 빠르고 편리해졌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혼란이 불가피해 지금이라도 전면 시행을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도로명주소 도입이 논의된 1995년과 비교할 때 위치정보서비스 기술발달 등 사회 환경이 달라졌다는 게 이유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올해 7월1~5일 10~50대 전국 남녀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길을 찾을 때 스마트폰의 지도ㆍ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다는 응답이 83.5%에 달했다. 이 중 43.5%가 하루 최소 한번 이상 사용했다. 올해 9월 기준으로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수가 3,600여 만명임을 감안하면 국민 상당수가 스마트폰이나 내비게이션을 통해 길을 찾고 있는 셈이다.
배달 업계도 네비게이션을 쓰기 때문에 도로명주소로 인한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제너시스BBQ그룹 커뮤니케이션실 곽성권 부장은 "치킨을 지번주소로 주문하든 도로명주소로 주문하든 배달에는 문제가 없다. 상권이 조밀해 배달지역을 거의 알고 있는데다 모르면 내비게이션으로 찾으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부)는 "정부가 도로명주소 도입을 추진한 건 지번주소가 위치정보로서 기능이 떨어졌기 때문인데 최근에는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는 대안이 많아져 도로명주소 도입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도 정부가 도로명주소 전면시행을 강행하는 이유는 뭘까. 최인욱 좋은예산센터 사무국장은 "상당한 정부 예산과 인력이 도로명주소 사업에 이미 투입돼 '가야하는 사업'이 됐다"고 지적했다.
1996년 7월 '도로명 및 건물번호 추진방안'이 발표됐고, 1997~2003년 전국 135개 도시에서 시범사업이 시행됐다. 시설물 설치에만 1,597억원이 쓰였다.
법적 주소는 지번주소 그대로 두고, 도로명주소는 생활주소로 병행 사용하는 것이 기본계획이었지만 도로명주소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실효성 없는 사업에 예산만 낭비된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당시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는 도로명주소의 입법화, 즉 주소체계의 강제 전환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2007년 도로명주소법이 제정ㆍ시행되면서 2008~2009년 도로명주소 설치사업에만 1,445억원이 투입됐다.
그럼에도 지난달 우정사업본부의 조사에서는 총 우편물의 17.7%만이 도로명주소를 단독 또는 지번주소와 병기해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기관과 40개 통신ㆍ카드ㆍ쇼핑업체가 모두 도로명주소를 사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민간 이용률은 훨씬 떨어지는 셈이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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