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장관,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장관이 참여하는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4자회의가 23일 오후 긴급 소집됐다. 남수단에서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 참여하고 있는 한빛부대에 일본 자위대의 실탄 1만발을 제공해달라는 한국의 요청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논의하는 회의였다. 아베 총리는 현지 사정이 급박하다는 이유로 이를 무기수출 3원칙의 예외로 인정한 뒤 실탄 제공을 결정했다. 무기수출 3원칙은 ▦공산권 국가 ▦유엔이 무기 수출을 금지한 국가 ▦국제분쟁 당사국 또는 그 우려가 있는 국가에는 무기를 수출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가 장관은 이날 ‘무기수출 3원칙의 예외 사례로 규정한다’며 ‘적극적 평화주의에 입각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공헌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적극적 평화주의는 아베 총리가 9월 유엔총회에서 밝힌 외교 구상으로 세계평화와 안정에 더욱 적극적으로 기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일본 정부가 최근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할 때 그 기본이념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적극적 평화주의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이론적 배경으로 활용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라는 지적도 많다. 그 같은 비판에 직면해 있던 아베 정권에게 한국의 실탄 제공 요구는 호박이 덩굴째 들어온 호재라고 할 수 있다. 이제껏 자신이 추진해온 행보가 우경화라는 곱지 않은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일본이 타국 군에 실탄을 제공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당시 총리가 무기수출 3원칙을 채택한 이후 무기의 국제공동개발 및 생산, 인도적 목적의 장비 제공 등 일부 예외를 두었지만 무기나 실탄을 직접 건네는 것은 엄격하게 규제했다. 하지만 아베 정권은 한빛부대에 실탄을 건네며 이를 예외로 규정, 무기수출 3원칙을 사실상 백지화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무기수출 3원칙을 대신할 새로운 원칙을 구상하고 있던 아베 정권은 무기 수출의 공개 논의가 가능해졌다며 이번 일을 반기고 있다.
그러나 비판도 만만치 않다. 아사히 신문은 “(실탄 제공이) 남수단에서 현지 무장 세력을 살상하는데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의 평화국가 이념에 부합하는 것인지 불투명하다”고 꼬집었으며 마이니치 신문은 “무기와 탄약의 양도를 무기수출 3원칙의 예외에 포함시키지 않던 기존 정책의 틀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치다 다다요시 공산당 서기국장은 “집단적 자위권 용인을 목표로 하는 정부의 우편향 노선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국제재선(國際在線)은 “일본 자위대가 해외에서 다른 국가에 탄약을 지원한 첫 사례”라며 무기수출 3원칙에 저촉되는 등의 이유로 논란이 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국제라디오(CRI) 역시 무기수출 3원칙 위반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시카타 도시유키 데이쿄대 교수는 “북한 정세가 불안해지는 상황에서 유사시 일본의 협력이 불가결하다는 의미가 담긴 것”이라고 해석했으며 일본 정부 관계자는 “꼬였던 한일관계가 개선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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