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로보로스'라는 상상 동물이 있다. 입으로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이데, 꼬리가 몸의 맨 앞인 입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라 영원성, 완전성 등의 상징이 되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읽은 동화 속의 우로보로스는 영원함과도 완전함과도 거리가 멀다. 옛날 옛적 한 아기 뱀이 살았다. 아기 뱀은 마음씨가 고와 차마 따뜻한 새알을 삼키거나 벌레를 잡아먹을 수 없었다. 친구 뱀들의 놀림을 받으면서도 풀잎이나 땅에 떨어진 열매만 먹으며 허기를 달래곤 했다. 그러다 겨울이 왔다. 풀잎도 열매도 찾아볼 수 없게 되자 춥고 쓸쓸하고 배가 고팠다. 주린 배를 견디다 못한 아기 뱀은 급기야 자기 꼬리를 한 입 뜯어 먹는다. 아픔을 무릅쓰고 한 입 또 한 입, 봄을 기다리며 꼬리를 뜯어 먹다가, 봄을 맞기도 전, 더 이상 어찌해 볼 수 없을 만큼 몽당한 몸뚱이가 된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더라? 그대로 눈 속에 파묻혔는지 천사의 부름을 받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겨울 나는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이 이야기를 읽다가 마지막 장을 남기고 담요를 뒤집어쓰곤 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얼어 죽거나 굶어 죽게 될 슬픈 끝이 싫었던 것 같다. 한 입만큼씩 짧아진 꼬리가 점점 더 짧아져 하나의 점이 되어버리길, 그래서 제 몸뚱이를 먹고 살찐 무구한 영혼만 고이 남길, 바랐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기 예수의 몸으로 환생하길 바라면서.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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