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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배상금, 아시아 민주주의 씨앗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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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배상금, 아시아 민주주의 씨앗으로"

입력
2013.12.2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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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를 반대하는 유인물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 가두던 시절이 있었다. 1975년 5월 이후 4년간 1,000여명을 구속시킨 긴급조치 9호가 있던 시절 이야기다. 긴급조치 9호는 위반하면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했고, 미수에 그치거나 예비ㆍ음모한 사람까지도 똑같이 처벌하던 공포정치의 상징이었다.

당시 유신체제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치다 고문을 받고 감옥살이를 했던 20대 청년들이 30여년이 흐른 지금 중년의 모습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긴급조치 9호 위반에 대한 무죄판결로 국가로부터 받은 민ㆍ형사 배상금을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기금으로 선뜻 내놓는 자리였다.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김종수 도서출판 한울 대표, 김준묵 전 스포츠서울 회장, 변재용 한솔교육 대표, 하석태 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 등 5명은 23일 서울 정동 달개비 컨퍼런스 하우스에서 배상금을 아름다운재단에 위탁하는 협약식을 가졌다.

익명의 출연자 1명을 포함해 이들 6명이 위탁하기로 한 배상금은 모두 5억5,000만원이다. 이들의 취지에 공감한 이필렬 방송통신대 교수 등 14명이 각각 100만~1,000만원까지 부담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와 기금 규모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렇게 모여진 기금은 아시아지역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을 위한 연구조사 사업, 국제 인권네트워크단체 지원 등에 쓰일 예정이다. 국내외 고문 피해자 지원과 인권 활동가 육성 등도 거론되고 있다. 예종석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은 "젊은 날 희생의 대가로 받은 국가배상금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민주화 세대의 고귀한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며 "이분들의 기금을 잘 운용해 국내외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쓰겠다"고 밝혔다.

기금 조성자 대표인 조희연 교수는 "한국이 일궈 온 민주화 운동의 시대정신이 아시아의 열악한 민주주의와 인권 현실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기부 취지를 설명했다. 조 교수는 서울대 사회학과 4학년이던 1978년 '유신헌법 철폐' 유인물을 만들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 받았다. 그는 2011년 재심을 청구, 올해 7월 무죄판결을 받았다.

같은 해 경희대 유신 및 긴급조치 반대 시위로 10개월간 복역했던 하석태 교수는 "34년 전 정의롭지 못했던 국가가 늦게나마 과거의 잘못을 시인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며 "나와 내 친구들이 젊음을 바쳐 얻어낸 소중한 결실을 아직 민주주의라는 축복을 받지 못한 나라들에 돌려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유신헌법을 반대하다 1979년 구속됐던 김종수 대표는 한국에서 수많은 국민들의 '피를 먹고' 자랐던 민주주의가 이 기금으로 다른 나라에서 아픔 없이 꽃망울을 틔우길 희망했다. "정치 탄압에 맞섰던 민주화 운동의 순수성이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는 보편적 정신으로 남아야 한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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