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사간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23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법사위와 본회의절차가 남아 있지만 여야간 이견이 해소된 만큼 이번 임시국회 처리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공약 중 하나인 신규순환출자 금지가 입법화됨에 따라 "얽히고 설킨 한국재벌의 낡은 지배구조를 바꾸는 데 중요한 진전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반면, 재계에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규제로 신규투자와 경영권방어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내년 4월부터 시행될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자산합계 5조원 이상의 대기업 집단 소속 계열사들은 앞으로 신규 순환출자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다만 ▲기업 인수합병(M&A) ▲증자 ▲구조조정(워크아웃, 법정관리, 자율협약) 등 불가피한 사유로 형성되는 신규순환출자는 예외로 인정되며, 이후 6개월~3년 내에 출자구조를 해소해야 한다.
순환출자란 한 그룹 안에서 A계열사→B계열사→C계열사→A계열사 식의 출자를 통해 자본을 늘려가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총수는 A계열사만 지배하면, 돈 한 푼 안들이고 B계열사와 C계열사에 대해서도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때문에 순환출자는 ▲선단식 경영을 통한 부실계열사 지원 ▲총수일가의 황제경영과 경영권 대물림 수단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신규순환출자 금지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신규는 물론 기존 순환출자도 해소해야 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번 국회심의에서도 야당은 기존 순환출자까지 털어낼 것을 요구했지만, 이 경우 대기업들의 지배구조가 너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신규순환출자만 금지하는 것으로 최종 정리됐다.
현재 62개 재벌그룹(대기업집단) 중 순환출자를 가진 그룹은 삼성 현대차 롯데 현대중공업 한진 동부 대림 현대 현대백화점 영풍 동양 현대산업개발 한라 한솔 등 14개로 총 124개의 순환출자고리가 만들어져 있다. 최근 5년 사이에만 9개 그룹에서 69개 고리가 새로 형성됐는데, 어쨌든 이들 기존 순환출자는 손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재계는 여전히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추광호 전국경제인엽합회 기업정책팀장은 "현재는 계열사 중 한 곳이 적대적 M&A 공격을 당할 경우 자금여력이 있는 다른 계열사가 출자를 통해 보호해줄 수 있는데 이젠 불가능해졌다"며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나라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장도 "글로벌 M&A자문사인 알릭스 파트너스의 보고서를 보면 내년 150여개 회사가 파산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하는데 순환출자금지에 묶여 누구도 쉽게 M&A에 나서기 힘들게 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는 재계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한 당국자는 "과거 대형기업 인수사례에서 순환출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 사례는 없었다. 순환출자 때문에 M&A가 힘들어진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경영권 위협에 대해서도 "대기업집단은 내부지분율이 높아 충분히 경영권 방어가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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