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신의 최대 정적인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전 유코스오일 회장을 석방한 데 이어 여성 펑크 록그룹 푸시 라이엇 멤버 마리야 알료히나(25)와 나데즈나 톨로콘니코바(23)를 23일 석방했다. 요하임 가우크 독일 대통령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이 러시아 인권 상황 등을 이유로 내년 2월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불참하기로 하자 다급해진 푸틴 대통령이 잇따라 깜짝 카드를 내놓은 것이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알료히나는 중부 도시 니즈니노보고로드의 교도소에서, 톨로콘니코바는 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의 교도소에서 이날 각각 출소했다. 알료히나는 현지 민영방송 도쉬티와 인터뷰에서 “이번 사면은 속임수이고 광고행위일 뿐”이라며 “만약 사면을 거부할 기회가 있었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정부를 비난했다. 교도소 산하 결핵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출소한 톨로콘니코바도 “러시아 전체가 유형지를 모델로 건설됐기 때문에 이 나라를 변화시키려면 감옥부터 바꿔야 한다”면서 알료히나와 함께 수감자들을 돕는 인권단체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푸시 라이엇 멤버 5명은 러시아 대통령 선거 운동이 한창이던 지난해 2월 얼굴에 복면을 쓰고 요란한 의상을 입은 채 모스크바 크렘린궁 인근 정교회 사원에서 푸틴 후보의 3기 집권을 비판하는 공연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수사당국은 멤버 5명 중 3명을 검거해 ‘종교적 증오에 따른 난동’ 혐의로 기소했고 1심 법원은 이들에게 징역 2년씩을 선고했다. 모스크바 항소법원은 지난해 10월 항소심 공판에서 범죄 가담 정도가 낮은 예카테리나 사무체비치에게만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알료히나 등 2명은 원심을 확정했다.
이들은 아이를 둔 엄마라는 점이 참작돼 사면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AP통신은 크렘린궁이 올림픽을 앞두고 러시아 인권에 대한 비난 여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단행했다고 지적했다.
10년 동안 복역한 뒤 20일 석방돼 독일로 출국한 호도르콥스키는 22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론 정치 활동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른 정치범들의 사면을 도울 계획이며 당분간 해외에서 지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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