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선생이 만든 영화 '한나와 그 자매들'을 본 후 열렬한 팬이 된 한 사람이 문안 드립니다. 그런데 젊은 시절에 선생 영화를 만난 후 함께 늙어가는 제가 왜 선생의 팬이 되었는지 아십니까. 선생의 영화는 정말 수다스럽지요. 웬 말이 그리도 많은지. 게다가 그 말들이란 것이 특별한 사건의 진행에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런 일상사거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또는 정치, 사회, 종교에 관한 넋두리나 논쟁들이지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그런 말들 아닐까요. 아, 선생은 잘 모르시겠지만, 태평양 건너에 있는 이 기묘한 나라에서는 말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말 대신 텔레비전(요즘은 그보다 훨씬 작은 장난감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요) 앞에 앉아 대부분 시간을 보냅니다. 그래서 누군가 말을 하려고 하면 "쉿, 안 들려" 하지요. 그 결과 이곳 사람들은 말하는 법을 잘 모릅니다. "제발 백성들과 소통하십시오" 하면 "나는 불통을 자랑으로 여긴다오" 하는 답이 돌아오는 곳이 이 땅이니, 아무리 선생이 이 나라에 와 본 적이 없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선생만큼이나 수다스러운 면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간이라서 이런 사회에 사는 게 참 고통스럽습니다. 어느 정도냐 구요. 저처럼 시끌벅적한 자가 12월 약속이 달랑 세 개뿐이라니까요. 왜 그러냐고요. 아, 불러주는 곳이야 많지요. 그렇지만 선생이 사는 나라와는 달리 새벽 다섯 시까지 모임이 이어지고 술 마시고 떠드는 이 기묘한 나라에서는 어느 모임에서나 금기시하는 이야기 소재가 있으니 바로 '정치'와 '종교'입니다.
그런데 선생. 잘 아실 테지만 인간의 현실을 주재하는 것이 정치요, 인간의 영혼을 주재하는 것이 종교 아닌가요. 그런데 이 기묘한 나라의 백성들은 두 소재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니까요. 그러니 저 또한 현실과 영혼이라고 하는 삶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두 가지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결국, 어떤 모임에서건 이 기묘한 나라의 시민들은 지나간 추억을 수백 번 반복하거나,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누군가의 은밀한 삶을 끝없이 추적할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술에 취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하는 노래를 부를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자리에 앉아 있기가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이게 제 12월 일정이 달랑 세 개뿐인 까닭입니다.
그런데 선생,
오늘날 세상은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은 아니지요. 누군가는 수조 원을 가지고도 부족하다고 온갖 매체를 동원해 죽는소리를 해대지만 수천만 원이 없어서 목숨을 끊는 사람에게는 마지막 삶의 궤적을 토해낼 권리가 고작 A4 용지 한 장만큼 주어질 뿐입니다. 세상의 고통에는 카메라를 애써 외면하면서 성형수술로 다 똑같아진 연예인들 얼굴에는 닿을 만큼 들이미는 공영방송국이란 곳은 '수신료 현실화' 어쩌고 하면서 백성들에게서 돈 몇 푼 뜯어낼 생각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힘없는 이들에게 말합니다. "이 좋은 세상에 생존할 수 있도록 해 준 우리에게 감사해라, 알았니?"
그렇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생존에 만족해야 합니다. 만일 생존을 넘어 생활인이 되고자 정치나 종교를 들먹였다가는 큰코다칠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 기묘한 나라 백성들은 어쩌면 일찌감치 지혜를 터득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요즘 들어 지혜를 상실한 이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이제껏 그 말을 못 해서 답답했다는 듯 정치 이야기를 커다란 종이에 적어 이곳저곳에 붙이기 시작했으니까요. 아, 뭐 그런다고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그런 학생들이 불려 갔다 와서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들려오긴 하지만. 그래서 이곳 백성들에게 안부를 묻는 김에 바다 건너 사는 선생에게도 인사를 드리는 겁니다.
"모두, 안녕하시지요."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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