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은 원시적이거나 주술적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쇠를 금으로 만들기 위한 인간의 욕망은 수많은 실험을 반복하며 새로운 물질을 생성해내고 발견하게 되었는데 축적된 연금술의 경험들은 근대화학의 기초를 다지는데 적잖이 기여하게 되었다.
1938년 미국의 듀폰사가 나일론을 개발했을 당시 거미줄보다 가늘고 철선보다 강한'꿈의 섬유'의 등장은 화학이 인류의 행복을 충족시켜줄 축복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그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위험의 그림자를 항상 동반하게 되는데 바로 화학사고인 것이다.
지구상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물질들은 무수한 반응을 통해 가장 안정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의 이로움을 위하여 인위적으로 생성된 물질들은 불안정한 상태로 그 성질을 이용해 의료, 섬유,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산업발전의 필수요소로 쓰이고 있다. 화학물질은 위험물과 유해물질로 분류해 소방방재청과 환경부에서 관리하고 있지만 수많은 제조업체, 산업현장 그리고 도심 한 가운데 캠퍼스 실험실에서도 취급부주의나 관리소홀로 인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화학사고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고는 1984년 인도 보팔에서 발생한 메틸이소시안 누출사고이다. 농약제조 원료로 쓰이고 있는 메틸이소시안이라는 유독가스가 2시간동안 36톤가량 누출되었고 2,800여명의 주민이 사망했으며 20만명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초대형 참사였다. 미국에서도 지난 4월 텍사스주의 비료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15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부상당하는 등 화학사고의 피해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인간의 실수를 놓치지 않는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 알려진 화학물질은 12만 여종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약 4만 여종의 화학물질이 유통되고 있으며, 매년 수 천 가지의 신규 화학물질이 국내로 반입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0년대 이후 조성된 화학산업단지의 대부분이 노후화되었고 화학물질의 유통량도 급속하게 증가해 화학사고의 위험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9월 발생한 구미사고는 8톤 가량의 불산가스가 누출돼 인명피해뿐 아니라 농작물 237.9ha와 가축 3,209두 등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켰고, 인근 주민들의 피해와 토양ㆍ 지하수 오염이 우려되고 있다.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의 화학사고 발생현황을 보면 연평균 1,274건으로 매년 소폭의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1,000건 이하로는 감소되지 않고 2012년 이후 오히려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가장 빈번한 사고의 유형은 누출사고, 화재, 폭발 순으로 나타나 대규모 화학사고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화학사고에 대한 전문대응을 위해 부처 간 협업체계를 구축하고 정부3.0을 실현했다. 전국 6개 권역별 합동방재센터가 일사불란하게 운영되고 있고 소방방재청 산하에 특수사고대응단이 만들어졌다. 지난 5일 구미119화학구조센터 개소에 이어 내년 초에는 여수, 울산, 시흥, 서산, 익산의 119화학구조센터가 설치되고 특수사고 발생 시 초동대응의 중심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특수사고대응단은 국가안전관리에 있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대응단 출범으로 부처 간 유해위험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됐고, 선제적 예방을 위한 합동점검이 가능해졌으며 국가산업단지 등 유해화학물질사고에 대한 신속한 대응수습체계를 갖추게 됐다.
러시아의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비롯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유출, 필리핀 타클로반을 강타한 슈퍼태풍으로 인한 대규모 인명피해 등 수많은 대형재난을 돌이켜 보면 자연과 인간이 순서 없이 만들어 내는 대형재난을 예방하고 대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알 수 있다. 특수사고대응단 창단 이후 그 역할이 한층 더 깊이 있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앞으로 화학사고를 비롯한 대형ㆍ특수재난은 우리가 '빨리빨리'를 외치며 안전을 소홀히 하거나 설마하며 방심할 때를 기다려 한 순간에 찾아올 것이다. 정부의 노력뿐 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나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연말을 맞아 한번 쯤 차분히 생각해 볼 때이다.
김일수 소방방재청 중앙119구조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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