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성탄절 아침이었다. 어떤 이들은 이브의 기억을 떠올리며 늦은 아침을 들고 있었고 또 다른 이들은 친구나 연인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한껏 들떠 있던 시간이었다.
1971년 12월 25일 오전 10시 서울 충무로 대연각호텔.
22층 건물의 특급호텔 2층 커피숍에서 '펑'하는 굉음 소리와 함께 불은 삽시간에 호텔 전체로 옮겨 붙었다. 값싸고 편리하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던 프로판가스의 밸브를 여직원이 잠그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커피숍에서 발화된 불은 곁에 있던 가스레인지로 옮겨 붙었고 나일론 카펫과 목조를 타고 슬금슬금 번지더니 이내 커다란 화마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불길은 겨울바람을 타고 88m 높이의 건물 전체를 붉은 불구덩이로 몰아 넣었다.
전날 이브를 맞아 밤 늦게까지 파티를 벌인 투숙객들은 혼비백산 할 수밖에 없었다. 메케한 연기에 숨을 죽여가며 비상구를 향해 달려갔지만 이미 출구는 아수라장이었다. 비상벨이 울렸지만 스프링쿨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탈출 매뉴얼도 존재하지 않았다. 밟히고 쓰러지면서 그저 창문과 옥상을 향할 뿐이었다.
서울시내 모든 소방서에는 비상이 걸렸다. 44대 소방차가 총출동했지만 예기치 못한 대형 사고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고가사다리가 동원됐지만 높이는 기껏해야 8층 언저리에도 이르지 못했다. 불길이 건물 전체를 감싸 안고 옥상까지 타오르자 구조 헬기가 출동하기 시작했다. 미군 헬기와 더불어 대통령 전용 헬기까지 구조작업에 투입됐다. 하지만 건물에 내릴 수 있는 헬리포트가 설치돼있지 않아 그저 밧줄만을 내릴 뿐이었다.
불길이 잡히지 않고 더 맹렬히 타오르자 충무로에는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로 인신인해를 이뤘다. 전국의 모든 보도진들이 현장에 집결했고 당시 상황은 시시각각 TV로 생중계됐다. 7층 이하 투숙객들은 고가사다리를 이용해 탈출에 성공했지만 고층 투숙객들은 생사가 엇갈렸다. 불길과 연기가 객실까지 들이치자 투숙객들은 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커튼을 로프로 만들어 탈출에 성공하는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투숙객들은 침대 매트리스를 발판 삼아 고층에서 뛰어내리다 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며 10시간이나 계속된 이날 화재는 163명의 목숨을 앗아가고서야 겨우 잦아들었다. 최악의 크리스마스로 기억될 이 날 화재는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역사에서 손꼽히는 대형 참사중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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