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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2월 24일] 성탄 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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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2월 24일] 성탄 전야

입력
2013.12.2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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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엔 하루 종일 둘째아이와 단둘이 함께 있었다. 그건 아내가 나에게 특별히 부탁한 일이기도 했다. 위로는 일곱 살 먹은 형이 있고, 아래론 세 살짜리 여동생이 있는 둘째아이는, 요 근래 들어 부쩍 제 엄마에게 이유 없는 떼를 부리기도 하고 괜스레 형의 장난감을 망가뜨리고, 제 여동생을 울리는 일들이 늘어났다. 나는 아내가 그것을 좀 고쳐주라고 그러는 줄 알았지만, 아내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그냥 온전히 둘째아이와 시간을 함께 해주라는 것이었다. 무언가 달래주기보다는 그저 자연스럽게 시간을 함께 하라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주말이어서 나는 조금 쉬고 싶었으나, 아내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아내는 나에게 둘째아이를 맡기고 이른 아침부터 첫째와 막내만 데리고 외출을 나갔다). 그래서 둘째아이 손을 잡고 내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시내 사거리에 위치한 대형마트. 그곳 완구 코너에서 나는 둘째아이가 평소 갖고 싶어 했던 5단 변신 합체 로봇 장난감부터 사주었다. 아이는 제 키 반 만한 장난감 상자를 들고 신이 나서 겅중겅중 뛰어다녔는데, 나는 그것만으로도 어쩐지 제대로 된 아빠 역할을 한 것만 같아 마음 한편이 뿌듯해졌다. 그 다음 코스로 내가 향한 곳은 영화관이었다. 하늘에서 음식이 떨어진다는, 다소 황당한 내용의 애니메이션이었는데, 둘째아이는 때론 박수까지 쳐대며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영화 중간중간 스마트폰도 들여다봤다가, 나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극장에 앉아 있는 다른 아빠들도 바라보다가, 결국엔 까무룩 의자 등받이에 기대 잠이 들어버렸다. 덕분에 피로는 많이 풀렸지만, 영화 내용은 무엇인지 하나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아이와 집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피자가게였다. 그곳에 앉아 피자를 기다리며 나는 은근슬쩍 둘째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아빠랑 단둘이만 있어서 좋았지?" 나는 아이가 함빡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릴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의 대답은 그게 아니었다. "아니, 하나도 재미없었어." 나는 조금 당황해서 허리를 좀 더 앞으로 숙이며 물었다. "왜? 장난감도 사고 영화도 보고 피자도 먹으러 왔잖아?" 그러자 아이의 입에선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아빠는 나랑 하나도 안 놀아주잖아? 장난감도 합체해주지 않고." 나는 아이의 말에 한동안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러면서 아내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그제야 조금씩 짐작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둘째아이한테 있는 것이 아니라, 나한테 있는 것이었구나, 둘째아이를 통해서 나를 보라는 것이었구나. 나는 묵묵히 그런 생각을 하고 앉아 있었다.

이제 날이 바뀌면 성탄절이다. 오늘은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깎아내리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없다. 교회를 다니고 있진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내려와 우리에게 주고 간 선물이 다른 무엇보다도 공감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 대신 한 사람이 죽었고, 죽을 것을 빤히 알면서도 뚜벅뚜벅 그 길을 걸어간 한 사람 때문에, 우리 모두의 마음엔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생겨버렸다. 그 얼룩 때문에 인류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기 시작했고, 그 노력들이 이어져 우리의 공감 능력이 되어 버렸다. 공감한다는 것은 타자를 타자 그대로 인정할 때 생겨나는 것. 아무리 자신의 아이일지라도, 정확하게 타자 그대로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가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탄 전야이지만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오늘 같은 날, 어떤 아버지는 해고 위협에 놓여 있고, 또 어떤 아버지들은 차가운 천막 안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 법과 원칙만 있는 세상엔 공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 세상에선 아비가 자식을, 자식이 아비를 이해할 수 있는 여지 또한 봉쇄되고 만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법과 원칙에 앞서, 세상 모든 아비와 자식들을 먼저 생각해보길, 그것을 간절하게 바래본다.

이기호 소설가ㆍ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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