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 파업이 정부와 노동계간 전면전으로 확대되면서 산적한 노동현안의 처리가 줄줄이 멈춰서게 됐다. 특히 통상임금 등 임금체계 개편과 장시간 노동 단축, 정년연장 등은 우리 노동시장의 체질 자체를 바꾸는 중요한 사안들이라 당장 노동시장의 혼란을 초래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우선 노사정이 시급히 머리를 맞대야 하는 사안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근로기준법 개정이다. 내년 3~5월 본격적인 임금ㆍ단체협상 시즌이 시작되기 전 법 개정을 마무리하려면 시간이 촉박한 데다,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통상임금 산입범위에 대한 노사간 이견이 커 노사정 협의가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다. 통상임금 뿐 아니라 2016년 정년연장 시행과 맞물린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임금 체계 전반에 대한 손질이 불가피하지만 대화 자체가 막혀버렸다.
임금체계 개편은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그 동안 정부와의 모든 대화를 거부해 왔던 민주노총도 경찰의 강제 진압 이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제안한다면 노사정 대화 참여를 검토하겠다"며 대화 의지를 내비쳤다. 한국노총 역시 통상임금과 관련 노사정 대화는 거부해 왔지만 "조합원의 의견을 물어 대화 참여를 결정하겠다"며 한 발 물러선 상태였다. 하지만 22일 경찰의 민주노총 강제진압으로 인해 노정간 대화가 모두 막히면서 통상임금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부터 임금체계 개편까지 모두 브레이크가 걸리게 됐다. 노사정 협의가 늦춰져 입법이 늦어지면 내년 임단협에서는 엄청난 혼란이 예상된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왔던 근로시간 단축 문제도 표류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회에 근로시간 단축 개정안이 올라가 있지만 적용 시기와 예외 규정 등에 대한 노사간 견해차가 커 사회적 대화가 꼭 필요한 사안이다. 특히 근로시간 단축을 핵심과제로 내세우고도 비용증가를 우려하는 재계의 반발 때문에 번번이 법 개정을 하지 못했던 정부로서는 노동계의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번 사태로 쉽지 않게 됐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공약인 고용률 70% 달성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일자리 문제는 노사정 신뢰를 출발점으로 하는데다 임금체계 개편, 정년 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의 현안들이 결국 고용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정부가 철도노조 파업을 해결하려다가 노동계 전체를 자극해 대화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며 "특히 노동시장 전반적인 개혁이 불가피한 시점이라 사회적 대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노사정이 대화 테이블에 앉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동 전문가는 "내년은 저임금 노동, 기형적인 임금 체계, 남성 전일제 중심의 일자리 등 산업화 시대의 노동시장 모델이 새롭게 전환되는 중요한 시점인데 정부가 노동계와의 갈등으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현 정부의 중대한 실책일 뿐 아니라 사회적인 손실과 후유증도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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