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실적 발표 전에 우호적인 애널리스트들을 불러 예상 실적에 대해 알려주는 경우가 종종 있고, 애널리스트들도 주식시장에서 큰 손인 기관투자자들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이 정보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22일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밝힌 '기업-증권사-기관투자자' 사이의 커넥션이다. 기업으로서는 애널리스트 및 기관투자자들과의 신뢰 관계를 형성해 향후 투자유치 등을 수월하게 할 수 있고, 애널리스트는 미리 알게 된 정보를 통해 자신의 정보력이나 능력을 과시해 실적을 올리는 수단으로 삼는다. 기관투자자들은 미리 접한 정보를 이용해 보유주식을 팔거나 새로 주식을 취득하는 방식으로 손실을 최소화하거나 수익을 극대화한다. 이 과정에서 일반투자자들은 철저히 소외된다.
자본시장조사단이 CJE&M의 주식시장 불공정거래를 중대사건으로 분류하고 조사에 착수한 것은 이 같은 커넥션이 일반투자자들에 큰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CJE&M의 사전 실적 유출 건은 기관투자자에게만 정보를 빼돌리는 공공연한 비밀이 드러난 것"이라며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에 철퇴를 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CJE&M은 3분기 실적 발표를 한달 여 앞둔 10월 중순 일부 기관투자자 및 애널리스트들을 불러 3분기 실적이 저조할 것이라는 정보를 흘렸다. CJE&M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3분기 실적이 세자릿수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2분기 CJE&M의 영업이익이 193억원에 달했다는 점에서 3분기 실적이 반토막 났다는 것을 암시한 것으로,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중요정보였다. 이런 정보를 미리 접한 기관투자자들은 그 달 16일 매도물량을 대거 쏟아내 4만원대를 넘나들던 CJE&M 주가는 3만6,000원대로 떨어졌으며, 이후에도 하락세를 거듭해 20일 현재 2만8,450원까지 하락한 상황이다. 기관투자자들의 물량을 사들인 일반투자자들만 손실을 피할 수 없었던 셈이다.
CJE&M에 대한 자본시장조사단의 조사 범위가 확대될 경우 파장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정보를 미리 입수해 주식을 매도한 연기금 자산운용관계자들은 물론이고 CJE&M 기업 고위 관계자들까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증권업계 고위 관계자는 "한국거래소가 CJE&M에 대해 3분기 실적을 사전에 유출했다고 판정을 내리고 제재금 400만원까지 부과한 만큼 혐의는 입증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CJ가 대기업이라는 상징성도 있어 파장이 적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조사단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주가조작 등을 엄단하라고 주문한 뒤 금융위원회, 법무부, 금융감독원, 거래소 등의 인력이 망라돼 구성ㆍ설립된 조직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정부가 CJE&M을 증권범죄 수사의 첫 중대사건 대상으로 분류해 조사에 나서는 것이 불공정거래 근절 방침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시범케이스'로 삼겠다는 뜻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유사 사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게임개발업체 게임빌은 일부 애널리스트를 통해 유상증자를 결정할 예정이라는 정보를 기관투자가에게 미리 흘려준 혐의로 최근 금감원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인수합병(M&A) 절차를 밟고 있는 벽산건설은 M&A 정보를 사전에 포착한 작전세력이 벽산건설의 주식을 미리 사들인 후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제기돼 금감원이 조사에 착수했으며, 두산중공업도 자사주 매각 결정 공시 직전에 대량 매도가 있어 정보유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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