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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엌 그녀의 식탁] <5> 가수 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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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엌 그녀의 식탁] <5> 가수 윤건

입력
2013.12.22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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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향기·음악 녹인 카페 '마르코의 다락방' 운영"나만의 아지트 갖고 싶어 서촌 주택가에 자리 잡아남다른 문화·예술적 기운이 음악 영감 주고 치유하기도스트레스 쌓이면 에스프레소, 설탕 곁들인 레몬커피도 좋아"

꼬불꼬불 서촌 골목길을 넋 놓고 걷다 보면 헤매기 십상이다. 어렵지 않게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을 만큼 키 낮은 건물들 사이로 고즈넉한 좁은 길이 양 갈래로 펼쳐지다 다시 모이고 또 헤어진다. 구글 지도도 내비게이션도 멍텅구리가 되는 곳이지만 길을 잃을 걱정은 없다. 미아가 될 만큼 넓은 곳도 아닌 데다 나라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 사는 곳 근처라 기꺼이 나침반을 자청하는 친절한 경찰관을 1분에 한 번쯤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용한 주택가를 돌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곳이 '마르코의 다락방'이라는 카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레고로 만든 작은 마을이 손님을 반긴다. 가수 윤건이 차린 카페라고 소문이 나면서 효자동의 명물이 된 이 곳은 유명 맛집 가이드 '블루리본서베이 서울의 레스토랑 2014'에도 이름을 올렸다. 연예인이 하는 카페라고 하면 흔히 유명세에 기대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내는 앙상한 곳을 떠올리기 쉽지만, 마르코의 다락방은 윤건의 취향과 음악이 녹아 있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

엄밀하게 따지면 마르코의 다락방에는 '그의 부엌'도 없고 '그의 식탁'도 없다. 매일의 일상이 묻어 있는 곳도 아니고, 매일의 칼로리를 채워 주는 곳도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겨울을 너무너무 싫어하는 데다 효자동이 겨울에 유난히 더 추워 자주 오지 않는다"는 말엔 번지수를 잘못 짚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피아노와 간이 침대, 탁자가 놓여 있는 2층 다락방에 올라가 보면 왜 여기가 그의 식탁과 부엌인지 알 수 있다. 음악과 집, 패션 그리고 커피가 하나가 된 공간, 마르코의 다락방은 그에게 사업의 터전이 아니라 자신만의 취향을 그러모은 아지트에 더 가깝다.

"처음엔 저만의 아지트를 갖고 싶어서 이쪽으로 오게 됐어요. 나만의 아지트를 차릴 생각이었는데, 집에 처음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한기가 싫어서 카페를 만든 거죠. 커피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요. 원래는 1층을 작업실로 쓰려고 했는데 주변이 주택가라서 소음이 클까 봐 2층에 방음 장치를 하고 조그맣게 작업실을 만들게 됐어요. 6년 전만 해도 서촌이 뜨기 전이어서 누가 올까 싶기도 했지만 친구들이 오면 되니 상관 없다고 생각했죠. 처음엔 카페란 게 막연하게 커피머신 하나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부엌에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더군요. 하다 못해 거품 떠내는 주걱까지 따로 필요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많이 배우게 됐죠. 카페를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북악산을 베고 누운 서촌은 싸늘한 산바람이 수시로 눈사태처럼 굴러 떨어지는 곳이지만, 윤건의 아지트는 따뜻한 커피 향으로 포근했다. 커피를 달고 산다는 그는 카페를 열기 전 커피 제조법을 배웠단다. 브라운 아이즈 시절 히트곡인 '위드 커피'(2001)도 그가 작곡한 노래다. 그가 좋아하는 커피는 아메리카노. 스트레스가 쌓이면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소개했던 것처럼 에스프레소 커피에 다진 레몬, 설탕을 곁들이는 레몬커피 '커피로망'을 마시기도 한다.

"커피도 좋아하고 집에도 관심이 많아요. 하지만 집은 좋아한다고 쉽게 사고 팔 수 없는 거잖아요. 6년 전이면 한참 음악을 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 때였어요. 주변 환경을 바꿔보고 싶었죠. 구시가지 느낌이 좋아 삼청동에 자주 갔었는데 알아 보니 너무 비싸더라고요. 그래서 여기로 온 겁니다. 전 큰 집보다 작고 아늑한 집이 좋은데 여기가 그랬어요. 남다른 문화와 예술적 기운이 있어서 영감을 주는 곳이죠. 카페를 차린 후로 가끔 (노)영심이 누나도 놀러 오고 (윤)도현이 형도 놀러 와요. 친구들과 새벽까지 와인을 마시며 놀기도 하죠. 제겐 음악 작업을 하는 공간이면서 치유의 공간입니다."

윤건은 음악은 물론 여행, 패션, 음식, 인테리어 등에 관심이 많다. 틈만 나면 여행을 궁리하고 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음악, 패션, 음식, 건축 등의 문화에서 영감을 받는다. 최근 발표한 앨범 '코발트 스카이 072511'는 지난 여름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여행에서 느낀 감흥을 담았다. 코발트 빛의 백야를 만끽하는 자유를 노래하는 '프리' 등 그의 자작곡 5곡이 수록됐다.

"여행이란 게 1주일 정도는 일정이 없어야 갈 수 있는데 그럴 때가 많진 않죠. 그런데 원래 있던 일정이 하나 없어져서 딱 1주일 쉬게 된 거예요. 출발 전날 끊을 수 있는 비행기 티켓을 찾다 헬싱키행을 구하게 됐어요. 지인들과 급조해서 떠난 여행인데 헬싱키에서 백야를 처음 보게 됐죠. 겨울이 긴 나라여서 여름이 되니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밤 늦게까지 백야를 즐기더군요. 그 에너지가 좋았어요. 잠깐이지만 즐겁게 놀다 왔죠."

카페를 시작한 뒤 그의 여행도 조금 바뀌었다. 여행을 가면 그 나라만의 맛을 찾아 다니고 멋진 카페에서 힌트를 얻기도 한다. 여행 친구 중엔 마르코의 다락방의 맛을 책임지는 셰프가 있어서 여행지에서 맛 본 음식을 카페 메뉴에 적용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취향이고 감성입니다. 의식주란 포괄적으로 하나의 문화이니까요. 카페를 하면서 그런 걸 더 잘 알게 됐죠. 카페엔 커피와 음식도 있지만 인테리어도 있고 패션도 음악도 있죠. 제 모든 취향이 같이 있는 거니까요. 그게 음악으로 반영되고 제 의상에도 반영돼요. 여행이 그런 영감들을 제공해주죠."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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