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등학교 교정에서 '방공, 방첩'만큼이나 흔히 볼 수 있었던 구호는 '지, 덕, 체'였다. 일제 교육 철학의 잔재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교육에서 지향하는 이상적인 인간은 지식이나 덕뿐 아니라 건강한 몸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체'는 우리 교육에서 사라져 버렸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매우 뜨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주관하는 국제 학업성취도 비교평가(PISA) 결과를 보면, 여전히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학, 읽기, 과학에서 높은 성적을 유지하거나 더 향상되고 있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고들 한탄하지만, 적어도 '덕'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체'에 관한 것은 무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거부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뇌의 활동으로 보자면 과학 연구 중 어떤 것은 육체적 활동과 또 어떤 연구는 음악이나 미술과 더 연관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과학이나 인문학 전공을 뺀 나머지를 '예체능계'라는 이상한 분류로 구분 짓기도 한다. 모든 교육 기관에서 운동을 등한시하는 사이,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 상태는 매우 위험한 상태로 치닫고 있다.
우리나라 남성의 평균 수명은 OECD국가들의 평균도 안 되며, 성인남성의 흡연율은 1, 2위를 다투고 있고, 음주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생활 습관이 불량한데도, 전체 국민 중 걷는 것 빼고 제대로 운동하는 인구는 10%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다음 세대들이다. 한창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할 아이들에게서 오히려 체육 시간을 빼앗아 가고 있다. 고등학생 중 일주일에 3일 이상 몸을 제대로 움직이는 운동을 하는 학생은 4명 중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40% 이상의 학생들이 삶에서 매우 큰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응답했다. 이 아이들이 쌓인 스트레스를 풀 곳은 게임이나 음란물 같은 중독성 매체나 '빵셔틀'로 대표되는 폭력적 행동 밖에 남아 있지 않다. 동양 아이들이 많이 살고 있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된 학생들을 쉽게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식사 중에 핸드폰 게임에 몰두해 있거나, 공공장소에서는 큰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면서 오히려 체육 시간에는 뒤쳐지는 것이 그것이다. 건강의 한 축인 먹는 것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들이 주로 즐겨 찾는 음식은 피자, 중국음식, 닭튀김, 떡볶이, 라면 등 고열량, 저영양, 고염식들이다. 현재의 노년층은 그나마 젊어서 많이 걸어 다니고 과식을 해보지 못한 세대라 이 정도의 건강을 유지하지만, 현재의 10대들이 노년이 될 때는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가 이들의 성인병 폭탄 세례를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학생들과 직장인들을 운동하게 만드는 묘책은 과연 없을까. 운동을 안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바빠서'이다. 이 말은 직장인은 직장에서, 학생은 학교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시설과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해결책이란 얘기다. 몇 년 전에 세계 초일류라고 자칭하는 우리나라 기업의 연구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점심식사를 마친 연구원들이 한다는 운동이 고작 주차장 한구석에서의 족구였다. 좋은 인재를 육성하려면 회식비를 많이 줘서 술을 먹게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체육관과 샤워시설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중고등 학생들의 경우에는 체육 시간을 정상화하고 대학 입시에 반영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자기소개서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이나 '인생에서 어려웠던 일의 극복 경험'을 묻는 문항이 있으면서 왜 '잘하는 운동과 이를 통해 얻은 교훈'에 대한 질문은 없는지 궁금하다. 미국에서 명문대학 가려면 꼭 필요한 '스펙' 중에 하나가 운동 경험이다. 단체 운동은 협동심과 전략적 사고 경험을 확인하는 좋은 방안이며, 건강한 체력을 가져야 대학에 들어와서 밤새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하면 운동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걱정도 있겠지만, 차라리 그렇게라도 운동을 시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장래를 위해 더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오래전 로마의 유베날리스라는 풍류시인은'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사실 그는 너무 건강만 추구하는 로마인들에게 '덕'도 쌓으라는 의미로 이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거꾸로 덕만 쌓지 말고 건강한 육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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