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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하나 캠페인] <8> 뇌병변에 지적장애 동반 김윤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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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하나 캠페인] <8> 뇌병변에 지적장애 동반 김윤겸군

입력
2013.12.2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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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이 달리는 걸 보면 부러워요. 나도 학교 형들과 달리기 시합하고 싶어요."

충남 서천군 문산면 지원리 한적한 마을. 노란색 학교 버스에서 내린 윤겸(9)이가 손에 케이크상자를 들고 절룩이며 걸어간다. 차에서 내려 집까지 거리는 불과 250m지만 다리가 불편한 윤겸이에게는 20~30분이 걸린다. 몸의 중심을 잡으려다 넘어지기 일쑤다. 그래도 윤겸이의 표정은 밝다. "이거 내가 학교에서 만든 건데 맛있어 보이지 않아요?" 케이크 상자를 들어 내보이는 손에 자랑이 묻어난다.

윤겸이는 태어날 때 장애를 달고 나왔다. 엄마 뱃속에서 탈장증세를 보여 의사가 포기를 권유했지만 아버지는 "어찌 생명을 포기할 수 있느냐"며 고집했다. 탈장수술 후 꼬박 한달 간 병원신세를 져야 했고 뇌병변 1급 진단을 받았다. 지적장애(3급)도 동반했다. 뇌병변으로 구부러지지 않는 다리를 펴기 위해 큰 수술을 여러 번 받았다. 위의 두 형도 장애를 갖고 있어 부모가 윤겸이의 치료에만 전념하기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설상가상 일용직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융자를 받아 산 집이 원리금을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갔다. 오갈 데 없는 처지에서 큰아버지가 나섰다. 큰아버지 김영관(56)씨는 2010년 자신이 살던 반지하 집은 동생에게 물려주고 윤겸이만 데리고 고향인 서천으로 귀향했다. 김영관씨는 "동생이 윤겸이까지 맡기에는 힘이 부쳐 나라도 돌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데리고 왔다. 아내도 조카를 데리고 사는 것에 선뜻 동의했다"고 말했다.

3년여 전 처음 큰아버지 집에 왔을 때 윤겸이는 제대로 앉지도 못할 정도로 증상이 심했다. 시골에서 윤겸이와 함께 살게 된 8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큰어머니는 윤겸이의 재활치료에 매달렸다. 집에서도 다리 근육을 키우기 위해 방에 담요를 깔아놓고 일어서기 연습을 시켰고, 서있기도 힘든 아이를 밖에 데리고 나가 걷기를 시켰다. 주위에선 모진 연습을 시키는 큰어머니를 "계모인가 보다"고 수군거렸다.

가족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윤겸이는 지난해 장애 등급이 뇌병변 4급으로 조정됐다. 다른 친구들보다 한 해 늦기는 했지만 지난해 초등학교에도 입학했다. 김씨는 "지금 이렇게나마 걸어다니는 것도 지 큰엄마 노력이라고 봐유. 그렇게 안 했으면 아마 학교도 못다니고 집에만 누워있었을 거유"라고 말했다.

다리 수술은 앞으로 몇 번을 더 해야 할지 모른다. 다행히 그간 수술비는 복지재단 등의 도움으로 해결했지만 문제는 재활에 들어가는 비용이다. 현재 수입은 큰아버지가 노인요양원에 근무하며 벌어오는 한달 100여만원이 전부여서 생활비로도 빠듯하다. 치료비를 보태겠다며 얼마 전부턴 큰엄마도 집을 떠나 식당 일을 하고 있다.

김씨는 윤겸이가 걷기뿐만 아니라 지적장애 치료도 받아 학습을 더 잘 할 수 있기는 바라고 있다. 그는 "윤겸이가 글자를 보거나 무슨 일을 한 후 돌아서면 바로 잊어버린다"며 "언어치료교실 등에 보내고 싶은데 형편이 안 돼 미안하다"고 말했다. "윤겸이가 최소한 고등학교까지는 마치고 제 밥벌이라도 했으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습니다."큰 아버지가 꿈꾸는 작은 소망이다.

서천=글ㆍ사진 허택회기자 thhe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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