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교수들이 박근혜 정부 첫 해를 압축하는 사자성어로 '도행역시(倒行逆施)'를 꼽았다. 순리를 거슬러 잘못된 길을 고집하거나 시대착오적으로 나쁜 일을 꾀함을 뜻한다.
22일 교수신문에 따르면 전공ㆍ세대ㆍ지역별로 안배한 교수 622명을 대상으로 지난 6~15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32.7%(204명)가 2013년 한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를 규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도행역시를 골랐다.
도행역시는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에서 오나라로 망명한 재상 오자서가 한 말로 사마천의 에 나온다. 오자서가 가족을 살해한 초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보복한 것에 대해 친구인 신포서가 질책하자 "날이 저물었는데 갈 길은 먼 처지라 도리가 아닌 줄 알면서 부득불 순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吾日莫途遠 吾故倒行而逆施之)"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후 신포서는 초나라를 부흥시켰고 오자서는 오왕 부차의 강압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수들은 이 고사성어를 통해 박 대통령의 불통 국정운영과 공안정치를 꼬집었다. 김선욱 숭실대 교수(철학과)는 "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 새로운 리더십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답답했던 과거 시대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육영수 중앙대 교수(역사학)도 "지금의 시대풍경은 혁명이 무너뜨렸다고 확신했던 구체제(앙시앵레짐)의 특권이 부르봉 왕가와 함께 부활한 프랑스의 왕정복고기와 닮은꼴"이라며 "최근 전국적으로 퍼지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네트워킹이 어둡고 천박한 시대의 얼룩을 씻고 역사의 수레바퀴가 전진하도록 도울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도행역시에 이어 2,3위에는 아무 실익이 없는 일로 다툼을 비유하는 와각지쟁(蝸角之爭ㆍ22.5%), 거짓이 진실을 어지럽힌다는 뜻의 이가난진(以假亂眞ㆍ19.4%)이 올랐다.
교수신문은 해마다 세밑과 세시에 '올해의 사자성어'와 '희망의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올해 초 교수들이 꼽은 희망의 사자성어는 '묵은 것은 없애고 새로운 것을 펼친다'는 뜻의 제구포신(除舊布新)이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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