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란 말이 있다. 기술을 산업화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표현한 말이다. 시장에 진출하지 못한 기술은 결국 연구실에서 사장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우리의 3D 기술은 이제 어느 나라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 세계 시장에서 빛을 보려면 죽음의 계곡을 무사히 뛰어넘어야 할 일이 남았다.
디지털 영화 마스터링이나 디지털 아바타, 교육용ㆍ훈련용 3차원 가상현실 등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3D 기술들은 모두 최근 사업화가 시작됐다. 마스터링 기술은 대규모 영화제에 적용됐고, 디지털 아바타 기술은 관련 업체가 이전 받아 소비자에게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으며, 가상현실 프로그램은 학교나 도서관에서 이미 쓰이고 있다. 별 탈 없이 죽음의 계곡을 넘어가는 중이다. 한동원 ETRI 차세대콘텐츠연구소장은 "개발 과정에서 이미 사업화 준비를 함께 시작한 덕분"이라고 밝혔다.
국가 연구비로 개발된 기술에 산업계가 관심을 보이며 제품화에 필요한 기술 개량이나 보완을 요청해올 때는 이미 정부 지원이 끝나 이를 해결할 예산이나 인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ETRI는 그래서 기술 개발이 완료되기 적어도 6개월 전부터 산업계의 수요를 찾아 나섰다. 기업들의 요구사항을 미리 파악해 남은 개발 기간 동안은 그에 맞춰 기술을 완성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과학자들이 기술 홍보에 적극적인 것도 산업화를 앞당길 수 있는 요인이라고 ETRI는 보고 있다. 산업계가 알아봐주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먼저 나서서 알려야 한다는 얘기다. 한 소장은 "우리 연구원의 기술들을 소개하는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고, 개발자들이 직접 기업 대상 설명회를 정기적으로 여는 등 기술 전시와 홍보 활동을 최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3D 기술 시장이 아직 좁다는 점은 죽음의 계곡을 극복하는 데 한계로 지적된다. 교육이나 엔터테인먼트 등 몇몇 분야에 한정돼 있는 데다 3D 콘텐츠를 다루는 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하고 인력 이동이 많아 기술이 안정적으로 누적되지 못한다. 이길행 ETRI 융복합콘텐츠연구부장은 "뛰어난 3D 콘텐츠를 만들어도 팔 데가 많지 않다"며 "나라가 공공 목적으로 신기술을 일정 부분 구매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정책을 시행해온 뉴질랜드 등 선진국의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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