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는 미술가의 의도가 있고 자신의 예술적 목표를 이루는 미술가만의 방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그림 속에서 이러한 점들을 하나씩 발견하는 것에서 커다란 즐거움이 생겨난다. 이 책은 발견하는 기쁨으로 독자를 인도하는 실마리이며 안내서인 셈이다. 이 책에 서술한 설명들이 그림의 모든 것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나의 발견보다 독자의 발견이 더 풍부할 수 있다.”
미술관 큐레이터와 승마선수 출신 교관, 말산업 전문기자가 모여 말과 그림에 관한 책을 냈다. 바로 ‘말을 보고 말을 걸다-전문가가 들려주는 그림 속 말 이야기’로 2012년 일간스포츠 신문에 연재되었던 명화칼럼 48편을 한 권으로 엮었다. 명화 속에 그려진 말과 그 속에 숨은 이야기들이다.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경력과 미술 칼럼 등을 기고한 오현미 씨가 캔버스 안에 그려진 그림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당대의 분위기, 화가가 처한 상황과 신념 등 전체적으로 작품에 대해 소개한다. 여기에 현재 한국마사회 교관으로 재직 중인 양희원 씨와 일간스포츠 승마 및 말산업 전문기자 채준 씨가 보다 미세한 시각으로 명화 속에 등장하는 말과 사람의 행동에 대해 분석했다.
‘말을 보고 말을 걸다’는 이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명화를 바라본 책이다.
19세기 화가 김홍도의 그림 3점도 다룬다. 단원풍속도첩 25점 중 역졸들이 대장간이나 역 주변에서 말에게 편자를 박는 모습을 그린 ‘편자박기’와 길 가는 여인을 훔쳐보는 젊은 양반의 모습을 담은 ‘노상파안’을, 김홍도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술기운에 흥이 올라 그린 ‘지장기마도’를 소개한다.
이 세 작품 속, 말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비슷한 시기, 같은 종(種)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자세와 생김새, 말을 그려내는 선의 굵기와 갈기의 표현까지 모두 다르다. 이는 김홍도가 자신이 어떤 말(言)을 하고자 하는지를 그림의 표현 방식을 통해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영국 화가 존 콜리어의 ‘레이디 고디바’의 뒷얘기도 흥미롭다. 자신의 백성들에게 부과된 무거운 세금을 덜기 위해 나체로 거리를 행진한 고디바에 대한 전설을 소개하며 ‘발견’한 것도 흥미롭다. 책 속에서는 “현실적으로 누드로는 안장을 올린 말을 탈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싶다. 영화 또는 그림 등에서 에로틱한 면을 강조하는 방법으로 누드 승마 장면을 담고 있으나, 이것은 작가의 상상력일 뿐 진정한 의미의 승마와는 거리가 멀다. 누드로 승마를 하게 되면 말을 잘 타는 사람들도 허벅지 안쪽 사타구니 부분에 마찰로 인한 찰과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또한 21세기 극사실주의 화가로 유명한 루시안 프로이드가 그린 ‘암망아지’를 통해 당시 어린 말이 가진 특징들을 자세히 알 수 있으며, 더불어 말과 함께 어울려 놀던 프로이드의 유년 시절 이야기에까지 이르게 된다. 18세기 계몽기에 활동한 작가로 과학적인 태도로 그림을 대하는 것이 특징인 영국화가 조셉 라이트의 ‘콜트만 부부’, 프랑스 후기인상파 화가로 너무나 유명한 고갱의 ‘여울’, 자크 루이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테오도르 제리코의 ‘돌격하는 경기병’, 로자 보뇌르의 ‘마시장’ 등도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다. plus81 펴냄. 1만5,000원.
정용운기자
한국스포츠 정용운기자 sadzoo@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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