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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12월 21일] 대통령의 눈과 귀 막는 실세들

입력
2013.12.2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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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집권에 공을 세운 인사들이 하나 둘 등을 돌리고 있다. 대선 끝난 지 불과 1년 만에 개혁 공신들이 쓴소리를 하며 떠나는 모습은 이전엔 보기 어려웠던 풍경이다.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추진위원장은 "나라가 발전하려면 지도자가 각성을 해야 하는데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내년 3월 독일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탈당 시기를 재고 있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경제민주화, 정치쇄신이 형해화했다"고 했고, 이준석 전 비대위원과 손수조 전 미래세대위원장 등 '박근혜 키드'들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박 대통령은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개혁적 인사들을 영입하며 당 쇄신을 이끌었다. 김종인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이준석을 통해 젊은층의 변화를 끌어안았다. 대선에서 안정적인 변화를 바라던 중도층이 대거 박 대통령을 지지한 데는 이들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박근혜표 개혁 마스코트가 됐던 이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사냥이 끝났으니 가마솥에 들어가 삶아지는 신세가 된 셈이다. 대신 박 대통령 주변에는 충성파와 돌격형 인사들이 포진했다. '유신 올드보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정점에 서있다. 흥선대원군 이래 최대 막후 실세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권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연말연시 불어 닥칠 인사태풍을 앞두고 고위공직자들이 '왕 실장'과의 끈을 찾아 다니느라 바쁘다는 말이 관가에서는 공공연하다. "김 실장과 인연이 없거나 미운 털이 박힌 사람은 아예 출세를 포기하라"는 말까지 나돈다고 한다. 한 주간지가 정치 전문가들을 상대로 한 권력 실세 설문조사에서 김 실장이 압도적인 1위에 선정됐다니 위세를 짐작할만하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는 대통령을 보면 눈물이 난다"던 김 실장의 발언에서 충성과 권력의 함수관계가 떠올려진다.

박 대통령의 오랜 심복인 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의 거친 말은 자주 정쟁의 소재가 된다. 그는 박 대통령 당선 1년을 맞아 기자들에게 "진짜 하고픈 얘기를 좀 하자"며 불만을 쏟아냈다. "대통령에 대한 불통 지적이 가장 억울하다" "4,800만 국민을 청와대로 불러 밥 먹이는 게 소통이냐" "저항세력에 굽히지 않는 것이 불통이라면 임기 내내 불통하겠다" 등등. 국민 대다수가 '불통'을 걱정하는데 핵심 실세라는 청와대 참모만 그렇지 않다고 우기는 형국이다. 이 수석은 민주당 양승조 의원의 이른바 '박정희 전철' 발언이 나오자 '언어살인' '위해 선동 조장''무서운 테러' 등 날 선 말로 비판했다. 양 의원 발언의 맥락을 살펴보면 과도한 해석이다. "조선왕조의 내시처럼 굴면 곤란하다"는 비아냥이 나오고 이 수석은 "나는 내시가 아니다"고 맞서는 등 한바탕 장외 설전이 벌어졌다.

당에서는 '친박 실세' 중의 실세인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대선 때 후보 수행단장으로 박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사석에서 '누나'라고 부를 정도로 친근한 관계다(윤 의원은 자신이 아니라 한선교 의원이라고 해명했다). 지난 달 열린 윤 의원의 출판기념회는'새누리당은 윤상현당'이라는 말이 왜 나오지를 실감케 했다. 각계인사 1,000여명의 축하객과 70명의 국회의원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룬 반면 같은 시각 개회된 국회 본회의장은 썰렁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축사에서 윤 의원을 일러 "당의 핵심"이라 했고, 최경환 원내대표는 "차세대 유망 정치인", 김무성 의원은 "대한민국 정치의 거목으로 자랄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다.

세간에서는 김기춘, 이정현, 윤상현 등을 전두환 대통령 당시 최측근이었던 허삼수, 허화평, 허문도 등 '3허'에 비유하기도 한다. 현 정부의 진짜 위기는 내년 봄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집권 1년이 지나도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지지기반이 급격히 흔들릴 거라는 전망이다. 박 대통령부터 달라져야겠지만 측근들을 바른 말 할 줄 아는 이들로 교체해야 한다. 실세들이 도가 지나치게 권력을 휘두르면 그 지탄은 대통령을 향한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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