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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12월 21일] 소치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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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12월 21일] 소치의 굴욕

입력
2013.12.2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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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연안 러시아 소치는 아열대성 기후이면서 코카서스의 설경도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휴양도시다. 그래서 러시아의 독재자들은 여기서 여름을 나고, 비밀정치의 무대로도 삼았다. 스탈린의 별장은 관광명소가 됐고, 푸틴 대통령도 정상회담을 할 정도로 애착이 대단하다. '보차로프 루체이'라는 대통령 전용별장도 있다. 어린 시절 이곳에서 프로의 꿈을 키운 러시아의 테니스 요정 마리야 샤라포바는 소치를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 2007년 소치가 유력 후보였던 평창을 제치고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도시로 뽑힌 데는 푸틴의 공이 컸다. 러시아어만을 고집하던 그는 올림픽 위원들에게 영어와 불어로 직접 프리젠테이션 하는 깜짝쇼를 했다. 현지실사 때는 슬로프를 직접 질주했다. 푸틴을 선장으로 한 유치단이 연극을 활용한 새로운 발표기법을 익히기 위해 개최도시 발표지인 과테말라의 산 속에서 10일간 합숙했다는 것은 오랫동안 후일담으로 남았다.

■ 이런 소치의 영광이 소치의 굴욕으로 바뀌고 있다. 백악관은 현직은 물론 역대 대통령 누구도 소치올림픽에 가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미국 전ㆍ현직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는 올림픽은 2000년 이후 없었다. 프랑스와 독일 대통령도 불참을 선언했다. 푸틴이 6월 밀어붙인 '반동성애법'에 대한 항의다. 미국은 한 술 더 떠 60~70년대 테니스 스타인 빌리 진 킹 등 동성애자 선수들을 사절단에 포함시켰다. 이들은 현지에서 동성애 퍼포먼스까지 준비하고 있다. 영국 유명 배우 스티븐 프라이는 "러시아가 올림픽을 개최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편지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보냈다.

■ 18년간 독재한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 이듬해 모스크바에서 열린 소련 최초의 올림픽이 서방의 보이콧으로 반쪽대회로 전락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지난해 징검다리 3선이라는 편법으로 다시 권좌에 오른 푸틴은 2024년까지 장기집권의 길을 터 '브레즈네프의 망령'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러시아 최초의 동계올림픽인 소치 올림픽과 푸틴에서 브레즈네프의 모스크바 올림픽이 떠오르는 것은 아이러니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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