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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12월 20일] 코리아 게이트와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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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12월 20일] 코리아 게이트와 FTA

입력
2013.12.1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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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10월 24일 미국의 워싱턴포스트가 무려 10개 면에 걸쳐 보도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코리아 게이트'는 쌀이 발단이었다. 보도 요지는 한국 정부 기관원으로 지목된 박동선씨가 72년부터 3년간 90여명의 미 의원 및 관료들에게 약 100만 달러의 뇌물을 뿌려 매수하려 했다는 것. 당시 쌀 수입을 독점하고 있던 조달청의 쌀 수입 단독 대리인이었던 박씨는 한국의 미국산 쌀 수입을 독점 중개할 경우 큰 돈을 벌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 씨는 친분있는 한국 미국 정치인들을 동원해 "대미 외교에 기여하겠다"며 정권 실세들을 설득했다. 정권은 조지타운대 학생회장까지 지낸 그의 폭넓은 사교술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닉슨 대통령이 71년부터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면서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에 7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금 압박도 받고 있었다.

박 씨는 톤당 50센트였던 쌀 수입 중개 수수료를 10달러 이상으로 올려받아 5,000만 달러 이상의 엄청난 부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 돈의 일부가 미 정계에 로비자금으로 쓰였고, 일부는 정권 유지를 위한 정치자금으로 유입됐다.

그러나 그 대가는 혹독했다. 박 씨는 주요 쌀 생산지인 캘리포니아 아칸소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출신 의원들에게 집중 로비를 하면서, 쌀 뿐만 아니라 다른 잉여 농산물까지 한국 정부가 사들이게 했다. 그 바람에 미국산 농산물이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국내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다. 농민들은 재배해서 팔아봐야 남는게 없는 작물 농사는 그만두고 대신 수입하지 않는 작물 쪽으로 몰렸다. 여기서 두 가지 악순환이 일어났다. 농민들이 재배를 포기한 작물은 급격히 수입 농산물로 대체됐고, 농민들이 집중 재배한 농산물은 공급 과잉으로 값이 폭락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국내 농산물 자급률은 급격히 감소했고, 밀과 옥수수는 전량 미국에서 수입하게 됐다. 농민들도 빚이 늘어나자 결국 농사를 포기하며 대책 없이 도시로 몰려 들어 도시빈민이 됐다.

30여년 전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것은 지난달 22일 끝난 한국과 중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제8차 협상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양허 품목에 철강, 석유화학, 기계류와 함께 일부 농산물을 포함시켰다. 정부는 전략상 품목 공개를 하지 않았지만 대 중국 교역품목이 1만2,000개인 상황에서, 관세를 철폐하지 않는 초민감 품목을 농산물로만 채울 수 없어 재배면적이나 농민수가 적은 품목을 10~20년에 걸쳐 관세를 철폐하는 민감 품목에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배면적과 농민수가 적다고 해서 여파가 적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30여년 전에도 그랬듯이 식량 수입 여파는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농민들이 한중 FTA를 반대하는 것도 이를 염려해서다.

지난 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9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난항을 겪은 것도 인도가 식량 안보를 이유로 협상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당시 아난드 샤르마 인도 상무장관은 "수백만 (인도) 농민의 이익이 보호돼야 한다. 식량 안보는 세계 40억 인구에 필수적"이라며 농업 부문의 WTO 타협안을 거부했다. 12억 명을 헤아리는 인구 대국 인도에서 수백만은 1%도 되지 않는 숫자다.

지난 11일 농축수산인들과 간담회 자리에서 밝힌 박근혜 대통령 말마따나 "무역으로 먹고 사는 우리 입장에서 FTA 같은 시장 개방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하지만 장기적 여파를 고려하지 않은 FTA 협상은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박 대통령도 "우리 농어업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고, 산업부도 "초민감 품목에 상당수 농산물을 넣어 다음 협상 때 최대한 관철시키겠다"고 했다. 내년 1월 열리는 제9차 한중 FTA 협상이 코리아 게이트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는 계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최연진 산업부 차장대우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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