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오면 긴장한다. 큰소리가 오간다. 언쟁을 하거나 뭘 잘못해서가 아니다. 연로(89세)하셔서 귀가 잘 안 들리기 때문이다. "애비냐" "예"라는 인사말만 한 번에 주고받지, 그 다음부터는 보통 서너 번 반복해야 한다. '예술의 전당'을 얘기하면 '전설의 고향'이라고 듣는 격이다. 간혹 길을 가다 통화를 하게 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 쳐다본다. 대개 불편한 표정이다. 아마 아버지에게 언성을 높이는 불효자로 생각했을 것이다.
■ 2년 전 보청기를 사드렸다. 한 두 번 써보더니 이내 서랍 행이다. 귀에 이물감이 느껴지고 "삐~삐"하는 잡음이 들린다는 이유에서다. 웬만하면 불편함을 감수하고 보청기를 사용할 텐데 오히려 답답함을 택했다. 하긴 가족 일이란 게 뻔해서 대강 의사소통은 된다. 날짜나 숫자를 정확히 해야 할 경우 옆 사람에게 전화를 넘겨 '통역'을 부탁한다. 그러나 그 좋아하는 정치 토론을 하지 못하고, TV 뉴스는 그림만 본다. 세상과 절반의 소통만 할 뿐이다.
■ 아버지를 뵈면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줄 알게 된다. 듣지 못하면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답할 수 없다. 대선 1주년을 맞아 제기된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논란도 따지고 보면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무척 억울한 모양이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자랑스런 불통'을 역설하기까지 했다. 저항세력에 굽히지 않는 것이 불통이라면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헐~"이라는 논평을 냈고 새누리당 내에서도 "과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 고대 중국의 현인으로 꼽히는 주공은 어린 주성왕의 섭정으로 나라를 다스릴 때 한 번 씻으면 머리를 세 번 거머쥐고, 한 번 먹으면 세 번 음식을 뱉었다고 한다. 목욕이나 식사 중에도 사람이 찾아오면 만났다는 고사다. 이런 자세가 '귀 기울이면 마음을 얻는다'는 이청득심(以聽得心)이 아닌가 싶다. 듣는다는 것은 싫은 얘기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선거는 지지세력만으로도 이길 수 있지만, 선정(善政)은 반대세력을 배제한 절반만으로는 어렵지 않을까.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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