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무원과 정치인의 부패가 만연한 인도에서 반부패법안이 처음 의회에 상정된 건 지난 1968년이다. 사회 지도층의 비리가 넘쳐 났지만 기존 사법체계로는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시민단체 등이 직접 나서 법안 제정을 추진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처벌 대상자가 되는 이 법안을 정치인들이 쉽게 통과시킬 리는 만무했다. 그렇게 잊혀져 가던 법안은 2011년 사회운동가 안나 하자레(76)가 당시 12일간의 단식투쟁과 이를 지켜본 수 많은 시민들의 지지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결국 "시민사회의 반부패법안을 의회에 넘겨 반영되도록 하겠다"는 정부 약속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도 잠시, 법안은 현실의 벽에 막혀 또 다시 서랍 속에서 잠만 자고 있었다.
인도에서 총리와 장관 등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의 부패행위를 처벌하는 법이 8차례의 시도 끝에 45년 만에 제정됐다고 현지 언론과 AP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외신에 따르면 반부패법안(일명 옴부즈맨 법안)이 17일 상원을 통과한 데 이어 18일 하원에서도 가결됐다. 이 법안은 독립적인 감시기관이 국민의 신고 등을 받아 해당 공직자의 비리를 조사해 기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형법을 위반하거나 부패행위를 상습적으로 사주한 공직자는 징역 10년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법안은 프라납 무커지 대통령의 승인을 거쳐 발효될 예정이다.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도 일단은 반부패법안 통과를 환영했다. 만모한 싱 총리는 "역사적이고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높이 평가했고, 집권 국민회의당의 소냐 간디 총재도 "매우 행복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간디 총재의 아들이자 여당 실세로서 법안 통과를 위해 애쓴 라훌 간디 부총재는 "큰 성공"이라면서 "다른 부패방지 법안이 추가로 의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법안 통과는 최근 델리와 라자스탄 등 5개 주에서 치른 주하원 선거에서 집권당이 4개 주에서 제1야당인 인도국민당에 참패를 당한 뒤 이뤄졌다. 일각에선 내년 5월 총선을 앞두고 아마드미당 돌풍에 위협을 느낀 기존 국민회의당과 인도국민당이 법안을 전격 통과시켰다는 분석도 나온다. 힌디어로 '보통 사람'을 뜻하는 아마드미를 당명으로 정한 이 정당은 지난해 11월 창당한 신생 정당임에도 최근 치러진 주하원 선거에서 무려 28석을 획득, 인도국민당(32석)에 이어 2위로 도약했다. 집권 국민회의당은 8석에 불과했다.
안나 하자레가 이번에 또 9일간 단식투쟁에 나선 것도 법안통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자레는 법안통과 직후 단식을 중단하면서 "많은 국민이 노력한 덕분"이라며 "퇴직 법관 및 경찰 총수 등으로 시민단체를 만들어 반부패법 이행을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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