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진 갖고 태어난 걸로 우려먹고 살았는데 더 이상 그럴 게 없는 상황이네요. 노력하지 않으면 끝날 것 같아요."
마흔다섯도 아니고 스물다섯 살짜리 가수가 청춘을 떠나 보내기라도 한 것처럼 한숨을 내쉰다. 1년만 지나도 강산이 바뀌는 가요계에서 10년째 살아남았다면 이팔청춘이라도 한숨의 자격은 충분하다. 그 한숨이 '비밀번호 486' '기다리다' '오늘 헤어졌어요'로 유명한 윤하의 것이라면 어떤 의미일까.
지난 6일 새 앨범 '서브소닉'을 내놓고 가수 활동을 재개한 윤하를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여전히 10대 소녀로 착각할 만큼 앳된 외모를 지니고 있는 그는 "더 이상 어린 나이가 아니다"고 했다. "주위에서 챙겨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젠 바뀌고 있어요.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노력해야 하는 여지가 더 생긴 것 같아요. 더 늦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소리보다 약간 느린 속도라는 의미의 '서브소닉'은 지난해 발표한 '슈퍼소닉'와 대구를 이루는 앨범이다. 전 소속사와 오랜 분쟁 끝에 다채로운 음악적 시도를 담았던 전작처럼 새 앨범에도 기존의 스타일과 새로운 시도를 함께 그러모았다. 6개의 신곡 중 2곡을 직접 썼다. 윤하는 "전작에선 내가 하고 싶은 걸 모두 구겨 넣으려고 했다면 이번엔 잘 정돈해서 마무리하는 것이 고민이었다"고 했다.
타이틀 곡 '없어'는 내향적인 선율에 랩과 현악 연주가 상반된 분위기를 연출하는 노래다. 그는 "주위 반응 신경 쓰지 않고 들어서 좋은 음악, 내 목소리가 잘 묻어 나오는 음악을 만들자고 이야기하며 완성한 곡"이라고 소개했다. 직접 작곡한 두 곡 중 '홈'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모든 게 참 쉽질 않아 / 그냥 되는 게 없지 / 그런데 네가 있어서 / 돌아갈 곳이 있는 난 / 강해지기로 했어'라는 가사엔 지난 날의 외로움이 묻어 있다.
윤하는 새롭게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서 외로움을 떨쳐낼 수 있었다고 했다. "따뜻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지만 정작 요즘 청소년들은 집에서 혼자 지내며 외로워하잖아요. 저도 집에서 마음이 불편하고 외로울 때가 있었어요. 그러다 존박이나 어반 자카파처럼 동갑내기 친구들을 만나면서 내게도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기게 됐고 그 친구들로부터 큰 위안을 받았어요. 물리적인 집이 아니라도 정신적인 안정이 있으면 집이라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데뷔 초 윤하는 가요계에서도 특이한 존재였다. 아이돌 성향의 댄스 음악을 하는 가수도 아니었고 데뷔도 일본에서 먼저 했다. "아이돌 그룹들 사이에서 소외된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는 그를 더욱 외롭게 만든 것은 전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인한 긴 공백이었다. "긴 공백기를 갖고 나니 '난 나의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설레기도 하고 용기도 생겼지만 외로움과 박탈감이 들기도 했죠. 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있었고요. 지금은 많이 안정을 찾았는데 그땐 무척 힘들었어요."
윤하는 새 앨범을 '전환점'으로 정의했다. '슈퍼소닉'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를 마치고 다음 장을 준비하는 단계라는 뜻이다. 27, 28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여는 콘서트의 제목도 '스물여섯 그리고'라고 지었다. "지금까진 어리니까 좋게 봐준 것도 있겠죠. 그게 득이 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을 거란 걸 잘 알고 있어요. 앞으로 행보에 따라 지난 10년이 아무것도 아닌 걸로 끝날 수도 있고 역사에 남을 수도 있겠죠. 열심히 해야죠. 직업이니까요. (웃음)"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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