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이 두통을 제거했지만, 우리는 이미 진통제(양적완화 정책)에 중독됐다."
5년간 전세계에 천문학적 달러를 풀었던 미국이 출구전략을 시작하자, 잭 애블린 미국 투자전문가는 이같이 평가했다. 그 동안 미국의 인위적인 양적완화 정책으로 전세계가 경기부양효과를 누려왔지만, 이제는 약효가 사라진 만큼 나라별 경제 기초체력에 따라 경제회복 속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고용지표 개선 등 경기 회복세를 보이는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은 미국의 출구전략을 환호했지만, 경제기초가 부실한 신흥국들은 해외 자금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에 위기감이 팽배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완화 축소 발표에도 18일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1%넘게 올랐다. 이제까지는 양적완화 소식이 들릴 때마다 투자 위축의 우려 때문에 주가가 떨어졌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양적완화 축소 결정은 Fed가 시장에 경기가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고 확인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뉴욕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나스닥종합지수도 1.15% 상승해 13년 만의 최고치로 마감했다. 영국 FTSE100지수(0.09%), 독일 DAX30지수(1.06%), 프랑스 CAC40지수(1.0%) 등 유럽 증시도 크게 호응했다. 일본 니케이225지수도 1.74% 올랐다.
일본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빠르게 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일본은 이번 조치로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엔화약세 흐름으로 수출에 청신호가 켜졌고, 해외투자가들도 일본시장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이승우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양적완화 축소 규모와 시기와 관련해 시장 예상치를 벗어나지 않았다"며 "선진국들의 경제성장이 기대되는 만큼 당분간 자금이 선진국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양적완화 축소로 국채금리도 크게 올랐다.
하지만 신흥국 시장의 자금이탈 우려는 여전하다.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은 이미 올 8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우려에 금융위기 직전까지 내몰렸다. 당시 폭락했던 통화가치는 일부 회복됐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유익선 우리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신흥국 내에서도 경제 기초가 튼튼한 한국과 러시아 등은 충격이 덜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들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상수지 적자 등 기초체력이 부실한 신흥국들은 해외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주식, 외환시장이 위축되고 결국 경기가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우려가 크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이번 양적완화 축소로 위험에 노출될 국가로 브라질 인도 터키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개국을 꼽았다. 이들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크고, 재정적자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경제성장률이 둔화된 중국도 미국 경제가 호전되면 단기적으로 자금이 빠져나갈 우려가 크다. 중국의 내년 성장률은 올해보다 낮은 7%안팎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금융위기 수준의 악재를 유발할 가능성은 적다. 선진국 경기회복을 전제로 하는 만큼 단기적으로 신흥국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곧 되돌아올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홍석찬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 경제 회복세가 유지된다면 양적완화 축소는 결국 신흥국에 호재가 될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충격을 받더라도 내년 선진국 위주로 경기가 회복되면 다시 신흥국으로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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