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당선 1주년을 하루 앞둔 18일 시민단체들이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고 촛불집회를 열었다. 외국 인권단체들까지 부정선거 의혹을 엄정 조사하라고 촉구하는 등 현 정부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이 봇물을 이뤘다.
이날 한국YMCA전국연맹 등 400여개 단체로 구성된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종로 보신각까지 '18대 대선 1년, 민주회복 시민행진'을 열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환자복을 입고 민주주의라고 적힌 팻말을 목에 건 채 목발을 짚거나 링거를 맞는 모습을 연출했다.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 개입 덮기,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지나친 강경 대응 등 현 정부의 실정으로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며 "민주주의 안녕하십니까"를 외치기도 했다. 국가정보원이 인터넷 댓글과 트위터 활동 등을 통해 불법으로 선거에 개입한 것에 빗대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노트북을 든 채 행진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행진에 참가한 한 시민은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만 해도 국정을 올바르게 운영해줄 것을 기대했지만 이제는 실망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 과정에서 소신 있는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고, 밀양 송전탑 건설과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등 사회적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국민들의 요구를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행진에 이어 민주수호 청년 연석회의는 서울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서 '청년토크 콘서트-응답하라 민주주의'를 개최했고, 경기 수원, 충남 아산 등 전국 곳곳에서 시국선언과 촛불집회가 잇따랐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도 이어졌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김성천 김연명 정슬기 교수는 '우리 제자들이 안녕하지 못해 우리도 안녕하지 못합니다'라고 쓴 손글씨 대자보를 학과 게시판에 붙였다. 서울 강남역에서는 영국 일본 칠레 등 외국인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안녕들 하십니까'에 동참한 것을 환영하는 시민들이 모임을 가졌다.
이 같은 움직임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19일 오전에는 시민사회와 종교계가 시국 기자회견을 가진 뒤 거리 행진에 나선다. 오후에는 서울광장에서 함세웅 신부, 정봉주 전 의원 등이 참석하는 '관권 부정선거 1년, 민주주의 회복 국민대회'가 예정돼 있다.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촛불집회는 21일까지 계속된다.
국제 인권단체들도 한국의 국가기관 대선 개입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의혹 해소를 위해 독립적이고 투명한 조사를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홍콩에 본부를 둔 아시아인권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한국의 대선 부정선거 의혹은 현재 확인된 것만으로도 심각한 불법행위임이 명백하다"며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태국 방콕에 있는 선거 감시단체 아시아자유선거네트워크도 17일 성명을 내고 "수많은 불법 선거 개입 중에서도 국정원의 개입이 가장 우려된다"며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와 수사관들이 정치적 방해 없이 엄정하게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에서 "국제 시민사회가 우려를 표명하는 것은 부정선거 논란에 대한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이 한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증거"라며 "정부는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의 모범이 돼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권고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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