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원칙과 신뢰 이미지에 금이 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이 1년 전 대선 당시 내걸었던 공약 이행 성적표를 두고 여권 내에서 나오는 말이다. 중도층 표심을 파고들며 대선 승리 일등공신으로 기여했던 복지 확대 및 경제민주화 등 핵심 공약들이 대폭 손질되거나 유보된 데 대한 반응이다.
대표적으로 기초연금 등 복지 공약의 후퇴를 들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당시 복지 확대를 내세우며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막대한 재정부담이 우려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TV 토론회에 나와 "재원 조달 방안을 검토해 실현 가능성 없는 공약은 뺏다"며 공약 이행을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지난 9월 정부는 "소득하위 70%까지만 국민연금과 연계해 차등지급한다"는 기존 공약보다 대상과 연금 액수가 대폭 축소된 기초연금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경기침체에 따른 재정여건 악화를 이유로 들었지만 선거 때 대선 공약을 총괄 입안했던 김종인 전 행복추진위원장은 "현행 예산으로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정부의 능력 부족"이라고 일갈하며 정부의 정책 의지 실종을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공약은 일찍이 인수위 때부터 선택진료비ㆍ상급병실료ㆍ간병비 등 3대 비급여는 보장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해 원안 폐기 논란을 낳았다. 2014년까지 대학 등록금을 실질적 반값으로 만들겠다던 공약도 정부가 1년 뒤로 시행을 미루자 여당에서조차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하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왔다.
또 다른 공약경쟁 대상이었던 경제민주화도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찬밥 신세가 됐다. 박 대통령은 공약집에 경제적 약자의 권익 보호, 공정거래 관련법 집행체계 개선,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행위 근절, 기업 지배구조 개선, 금산 분리 강화 등을 내걸었지만 실제 입법이 완료된 것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한도 축소, 공정위 전속고발권 요건 완화 등에 불과하다.
신규순환출자 금지나 모든 금융권에 대주주 적격성 유지 심사 확대 등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을 위한 공약들은 아직 본격적인 논의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줄곧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돼선 안 된다"는 등 속도조절론을 펼치면서 정부 여당이 경제활성화로 정책 방향을 선회한 탓이 크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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