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 1,000만명의 트위터 팔로워를 가진 유명 인사, 극심한 피부병으로 온 얼굴이 혹으로 뒤덮인 이에게 입 맞추는 휴머니스트, 노숙자를 만나러 잠행하는 사제, 청소년들과 셀카를 찍는 신세대 할아버지….
올 3월 취임한 이래 다양한 모습으로 전 세계에 '부드러운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프란치스코(77)교황이 추기경 시절이던 2009년 아르헨티나의 두 신문기자와 나눈 대담집 (알에이치코리아 발행)가 나왔다.
지금까지 국내에 나온 프란치스코 교황 관련 서적이 성직자로서의 교황을 그렸다면, 이 책은 한 인간으로서 그의 내밀한 자기 고백을 담았다.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탱고와 횔덜린의 시를 좋아했고, 인내와 침착함은 부족하다는 등 사생활부터 추기경으로서 당면한 가톨릭 문제까지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털어 놓았다.
그동안 국내에 발간된 교황에 관한 책은 모두 5권. 추기경 시절 종교지 기자와 대담한 내용을 엮은 (생활성서사), (성바오로출판사), 종교와 유대인 대학살, 죽음, 동성애 등을 주제로 유대교 랍비와 대담한 (율리시즈), 교황의 인생ㆍ종교ㆍ삶에 대한 303가지 메시지를 엮은 (하양인), 교황 선출 과정을 엿볼 수 있는 (하양인) 등이다.
이번에 나온 책을 읽다 보면 자본주의와 양극화 문제를 지적하고, 가난한 이들을 우선하며, 동성애자를 껴안으려 하고, 사제와 신도의 현실 참여를 촉구한 교황의 최근 발언이 즉흥적인 것이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교황은 종교의 정치 개입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변했다. "정당정치에 관여하지 말고 십계명과 복음서를 기반으로 한 위대한 정치에 참여하는 겁니다. 인권 유린과 착취 또는 배척 상황, 교육 또는 식량 부족 상황을 고발하는 것은 정당정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 요강을 보면 수많은 고발 건들이 있지만 그것은 어떤 당파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서면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저는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측면에서 정치를 하지만 정당에 속해서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답합니다."
교황은 청춘들에게도 위로의 말을 건넸다. 교황은 "젊을 때는 누구나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젊은이들은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최근 대학가에서 퍼지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과 맞물려 울림을 주었다.
낙태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했지만 낙태 여성에게는 연민을 느낀다면서 진일보한 자세를 보였다. 교황은 "임신부가 품고 있는 것은 칫솔이나 암덩어리가 아니라 새 생명"이라며 "낙태는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인 지식에 기반한 (생명을 지키는) 윤리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낙태 여성에 대해서는 "얼마나 큰 심적 부담을 느끼겠는가를 생각할 때 성서적인 의미에서 연민을 느낀다"고 했다.
책에서 교황은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제 실수입니다. 이런저런 것이 제 단점입니다. 시간이 또 인생이 저에게 가르쳐준 것들입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항상 겸손한 태도로 이웃, 특히 고통받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공감하려는 교황의 노력이 느껴진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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