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감독들이 강속구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스피드 대신 제구력을 택했다.
한화는 18일 오른손 케일럽 클레이(25)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올 시즌 트리플A(워싱턴 내셔널스)에서 14경기에 출전해 5승2패 2.49의 평균자책점을 올린 투수다. 지난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로 보스턴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었던 특급 유망주다. 다만 직구 최고 시속은 140㎞ 초반대로 그리 빠르지 않다. 커터와 슬라이더, 커브와 체인지업 등을 던져 맞혀 잡는 유형이다. 한화는 올 시즌 뒤 강력한 직구의 대니 바티스타를 포기하는 대신 기교파 투수를 선택했다.
이에 앞선 삼성과 SK의 선택도 비슷했다. 삼성은 지난 12일 직구 평균 시속이 140㎞ 초반대인 존 데일 마틴(30)과 계약했다. 평소 류중일 삼성 감독은 타자를 윽박지르는 강속구 투수를 선호했지만 이번에는 선택이 달랐다. SK도 직구보다는 체인지업, 싱커가 주무기인 오른손 투수 로스 울프(31)를 14일 영입했다. 울프는 직구 평균 시속이 145㎞로 그리 빼어나지 않지만 다른 구종의 위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동안 9개 구단 스카우트는 빠른 공의 투수를 찾는 데 주력했다. 내년에도 LG 유니폼을 입는 레다메스 리즈, KIA와 한화가 각각 재계약을 포기한 헨리 소사와 바티스타가 대표적이다. 도미니카공화국이 각 구단 스카우트의 집결지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도미니카 출신의 투수들은 어렵지 않게 강속구를 뿌려 댄다.
하지만 국내 프로야구 상황이 많이 변했다. 타자들의 배트 스피드가 몰라보게 빨라졌다. 아무리 빠른 공이라도 한 가운데로 몰리면 정타, 나아가 장타로 만들 수 있는 기량들을 대부분 갖추고 있다. 과거에는 강속구 투수가 많지 않아 타자들의 반응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이제는 생존 본능 탓에 타이밍을 맞히는 기술이 발전했다.
이는 프로야구 감독들이 강속구 투수를 과감히 포기하는 이유로 작용했다. 팬들을 열광시키는 160㎞의 스피드가 반드시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공이 빠르면 대부분 제구가 좋지 않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직구에 곁들일 변화구도 마땅치 않아 볼 배합이 단순해지기도 한다. 사실 공이 빠르고 제구가 좋고, 변화구까지 훌륭한 투수는 한국 무대가 아닌 메이저리그에서 뛰어야 한다.
야수들의 수비력에 대한 자신감도 이번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삼성, SK는 기본적으로 내외야 수비가 탄탄한 팀이다. 한화도 자유계약선수(FA)로 영입한 정근우, 이용규에다 외국인 타자 펠릭스 피에(28)의 수비 범위가 넓다. 홈 구장까지 상대적으로 커 맞혀 잡는 투수로도 충분히 승산 있다는 계산이다.
투수 조련에 일가견이 있는 김시진 롯데 감독은 “공이 빠르면 물론 좋겠지만 역시 제구력이 최우선이다. 불넷을 남발하지 않아야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다”며 “어느덧 모든 선수들이 던질 줄 아는 체인지업을 비롯해 싱커와 커터 등 변종 직구를 원하는 곳에 던진다면 그만큼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