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 '연소성 골수 단핵구성 백혈병'이란 희귀병 판정을 받은 세살배기 수현이(사진). 5개월째 손바닥 만한 가슴팍에 약물투여용 호스를 꽂고 여섯 차례에 걸친 항암 치료를 견디고 있지만, 혈액을 만드는 줄기세포인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 국내에서 기증 의사를 밝힌 사람 중에는 수현이와 유전자가 일치하는 이가 없다.
무급휴직을 내고 아들을 돌보는 아버지 김선욱(31)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직장 동료 100여명이 지난달 적합하기만 하면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기본 검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기증 희망자와 유전자 검사기관을 이어주는 조혈모세포 기증희망 등록기관 5곳의 예산이 모두 바닥났기 때문이다.
1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이들 5개 기관에 지원된 예산은 총 43억4,600여만원으로 1만9,000여명이 조혈모세포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규모다. 하지만 등록기관들은 이미 예산을 다 써 대규모 인원의 검사는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 관계자는 "내년에 검사비용 보전이 이뤄질지 알 수 없어 많은 인원의 검사는 하기 어렵다"며 "내년 2, 3월쯤 예산이 나올 때까지 공백이 있다"고 털어놨다.
민간병원에서 조혈모세포 검사를 하려면 기본 유전자 검사비만 1인당 100여만원, 여기서 일치 판정이 나와 정밀검사로 넘어가면 또 200여만원이 든다. 이미 몇 차례 검사비용으로 수백만원, 병원 치료비로 4,000여만원을 쓴 수현이네 사정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김씨 부부는 그동안 수현이와 조혈모세포 유전자가 일치하는 기증 희망자를 백방으로 찾아 다녔지만 허사였다. 해외로 눈을 돌린 부모는 국내 등록기관들과 협약을 맺은 중국에서 아들과 유전자 일치 가능성이 높은 기증 희망자 3명과 접촉했다. 2명은 거절했고, 1명은 정밀검사 결과 10개 유전자 검사항목 중 8개만 일치했다. 이식을 하려면 적어도 검사항목 9개 이상이 맞아야 한다.
수현이 어머니 타몬 판자(29)씨는 지난 10월 모국인 태국에 건너가 아들과 기본검사 결과 유전자가 일치한 이를 찾았지만 역시 불발됐다. 정밀검사 결과 또 8개 항목만 일치했다.
결국 새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를 찾아야 하지만 기본 검사조차 할 수 없어 희망은 꺾이고 있다. 김씨는 "돈이 없어 검사조차 못한다니 답답하다"며 "공여자를 끝내 찾지 못하면 아들과 유전자 항목 6개가 일치한 아내가 내년 1, 2월쯤 반일치 이식을 해야 할 상황인데 성공률이 낮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수현이는 이달 초 암 세포 수치가 떨어져 퇴원했다가 며칠 만에 상태가 악화해 13일 다시 입원해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
등록기관 관계자들은 관련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 관계자는 "기증 희망 누적 등록자 수를 50만명으로 끌어 올려야 국내에서 이식 대기자가 이식을 받을 확률이 90%가 되는데 이를 위해 지원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등록자 수는 26만여명에 불과하고, 내년 예산도 올해 수준으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예산과 제도의 벽에 막혀 어린 생명이 꺼져가고 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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