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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죽어라 공부만 하면 성공?… '고진감래형 교육' 패러다임부터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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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죽어라 공부만 하면 성공?… '고진감래형 교육' 패러다임부터 바꿔야"

입력
2013.12.17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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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린식 행복교육이란진로체험 기회·독서 등 통해 꿈과 끼를 찾게 하자는 것올바른 적성교육 뒷받침되면 성적은 자연스레 동반 상승혁신학교 왜 문제삼나민주 공동체 같은 긍정성 불구 학력 뒤처지고 성과도 전무폐지보단 운영 내실화 기해야… 자생 여부는 내년쯤 판가름여러 사회적 성장 통로 필요학생들의 소질·역할 다양한데 진학·취업엔 성적만 기준섣부른 '문·이과 통합' 보다 행복을 위한 가치 먼저 가르쳐야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은 교육계도 예외는 아니다. 지역 교육을 진두지휘 하는 교육감 역시 이런 구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다. 오죽하면 '보수 교육감''진보 교육감'따위의 딱지를 붙여 놓았을까. 야당이 밀면 '진보' 여당의 지원으로 교육감 자리에 오르면 '보수'로 대못질 한다. 이를 적용하면 문용린(67) 서울시교육감은 보수다. 여권 후보로 나와 당선된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문 교육감은 "교육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자체가 넌센스"라는 생각이 확고하다.

사실 그는 진보 정권 시절인 김대중 정부 때 교육부 장관을 했다. 이런 이력으로 치면 보수 정권인 박근혜 정부에서 '교육소통령'인 교육감을 맡고 있는 건 교육에서 이념이 부질없음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그는 "교육마저 정치와 이념에 휘둘린다면 그 피해는 100% 학생들 몫"이라고 단언했다. 취임 직후부터 꿈과 희망과 비전을 심어주는 게 공부에 앞서야 한다는 소위 '행복교육'운동을 벌이고 있는 문 교육감이 서울 교육의 사령탑이 된 지 1년을 맞았다.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로 30년 이상 후학들을 가르친 교육학자이기도 한 그를 만난 이유는 '행복교육'을 듣기 위해서였다.'행복교육' 운동이 성적 향상이나 명문 학교 보내는 데 혈안이 된 우리 교육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화두인 데다, 점수 올리기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보수 교육감'이 총대를 멘 까닭이 궁금했다. 진보 진영이 반발하고 있는 '혁신학교' 축소 논란도 인터뷰 포인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본론을 잠시 뒤로 미루고 그를 둘러싼 이슈부터 꺼냈다.

-검찰이 최근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소장 변경을 신청하면서 제출한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 트위터 글에 서울시교육감 선거 관련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시교육감 선거 여론 조작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어요.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사실 여부가 확인되겠죠."

-여론 조작이 실제로 있었다면요.

"(잠시 침묵 후) 사법부가 현명하게 판단할 겁니다."

그는 진보 성향의 전임 곽노현 교육감이 선거법 위반 형이 확정되면서 지난해 대통령 선거 때 함께 치러진 보궐선거를 통해 교육감에 당선됐다. 곽 전 교육감의 주요 정책 유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혁신학교는 더욱 그랬는데, 문 교육감은 내년 혁신학교 관련 예산을 대폭 줄였다. 40억 원 깎았다. 그러자 민주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는 오히려 54억원 늘린 예산안을 편성했다. 맞불을 놓은 것이다.

-혁신학교 예산을 왜 줄였나요. 곽노현 색깔 지우기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혁신학교 예산이 학교당 평균 1억5,000만 원이에요. 학교당 평균 5,000만 원인 교육부 지정 창의경영학교나 다른 시도 혁신학교 보다 3배 정도 많아요. 특히 연간 평균 1,200만 원을 지원받는 서울시교육청 연구학교에 비해선 지나치게 높지요."

-과다 지원이 문제였다는 건가요.

"운영 내실화가 필요하다고 봤고, 서울시교육청 재정 상황도 고려했어요. 학교당 평균 연 6,000만 원 가량을 지원하는 게 적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내년에 혁신학교 숫자를 늘리기로 한 경기도교육청과 대비되는데요.

"혁신학교는 내년이면 시행 4년이 됩니다. 자립할 수 있을 만큼 운영에 성숙도를 갖춰야 해요. 운영 프로그램이 제대로 구축됐는지 자문해야 할 때라고 보고 있어요."

혁신학교와 문 교육감은 궁합이 잘 안 맞는 듯 했다. 전국교직원노조 등 진보 진영에서는 시교육청 감사 결과, 교장권한을 침해한 어떤 사례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문 교육감을 압박하기도 했다.

-혁신학교가 운영의 자율성을 확보한 좋은 사례가 아닌가요.

"민주적 공동체 같은 긍정적인 부분은 인정하고 있어요. 그러나 예산 지원 규모에 비하면 성과가 미비한 측면도 있습니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 비율이 일반학교보다 높아선 곤란해요. 혁신학교가 '그들만의 학교'가 돼선 안 됩니다."

-시교육청이 혁신학교의 성과를 왜곡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혁신학교는 성과를 평가할 만한 결과가 나온 게 전무해요. 오히려 학업성취도 결과를 기준으로 본다면 학력이 뒤처지고 있어요."

-폐지할 계획도 있나요.

"없애는 것보다 보완이 필요하다고 봐요. 일반학교들?이해할 수 있을 만큼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해요. 자생할 수 있을지는 내년이면 판가름 날 겁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라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성적 지상주의가 낳은 '비극'이지만, 해법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자녀가 '성적의 노예'가 되는 걸 바라는 학부모는 아무도 없으나, 좋은 학교 입학이 성공의 지름길로 굳어진 사회의 인식을 깨뜨리겠다는 노력에선 적극성이 약하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딜레마다.

-이른바 '문용린식 행복교육'이란 어떤 건가요.

"학생들이 꿈과 끼를 찾아 행복하게 미래를 준비하도록 돕는 거죠. 꿈이 있는 학생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거고, 아무리 난관이 닥쳐도 극복해 나갈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고요. 진로 체험 활동을 강화하거나 독서를 통해서 꿈과 끼를 찾게 하거나, 체험학습 기회를 대폭 늘리는 것들이 방법론이지요."

-공부에 찌든 학생들에게 '행복교육'이 와 닿을까요.

"우리 사회는 오랜 기간 '고진감래형 교육'에 익숙해져 있어요. '행복교육'이 빠른 속도로 정착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죽어라 공부만 하면 성공한다'는 교육 패러다임을 바꿔야 학생들이 행복해질 수 있어요."

문 교육감은 "교육청이나 학교, 사회가 행복교육을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면 성과를 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고 했다. 문제는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일정 정도의 성적 유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행복교육은 '한가한 소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성적과 행복을 떼어놓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행복교육의 출발은 올바른 진로ㆍ적성교육이에요. 중학 때부터 자녀들의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이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성적도 동반 상승한다고 봅니다. 꿈이 없고 적성(끼)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공부는 의미가 없어요. 그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을 하자는 거죠. 중학교 1학년 2학기를 자유학기제로 운영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성적 중심의 교육 방식부터 뜯어고치는 게 순서 아닌가요.

"우리 사회엔 사회적 성장 통로가 성적밖에 없었어요. 학생들의 소질과 적성, 사회에서 할 역할도 다양한데, 그 학생들이 진학하고 취업하는 과정에서 성적만을 기준으로 삼잖아요. 당연히 행복할 수 없죠. 여러 사회적 성장 통로를 마련할 때가 됐다고 봐요."

우리 교육의 블랙 홀이 돼 버린 대학 입시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의 목표 달성도 난망하다. 다른 대학 입시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서울대 새 입시안에 대해 물었다.

-서울대가 2015학년도부터 문과생도 의대나 치대 지원을 허용하기로 했는데요.

"너무 이른 감이 있어요. 문ㆍ이과 통합 교육은 필요해요. 문과생이 의대나 치대에 가서 공부 못할 이유가 없지요. 그렇지만 준비가 돼 있나요?"

-반대한다는 의미인지요.

"교육은 급하게 해선 실패합니다. 방향은 이해하지만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하는 건 안 돼요. 문ㆍ이과 융합교육은 중학교 때부터 익숙해져 있어야 해요. 이게 안 된 상태에서 문과생들에게 의대나 치대를 개방한다는 건 우수 학생들을 싹쓸이 하겠다는 얘기밖에 안 됩니다. 국립대가 할 짓이 아니죠."

그는 교사의 힘을 믿는 편이다. 좋은 학교는 교사의 역량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엔 음악을 전공한 교사들이 참여한 '서울교원음악대전'을 연데 이어, 13일엔 미술 전공 교사 대상의 '서울교원미술대전'을 개최한 것도 교사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전문성을 고취시키려는 목적에서다.

-대입 시즌입니다.

"점수에 따라 대학과 학과를 정하진 마세요. 하고 싶고,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심사숙고해 전공을 선택해야 해요. 두고 보세요. 제 말이 맞을 겁니다."

문 교육감은 '행복 전도사'로 불리기를 원하는 듯 했다. "감사, 용서, 희생, 배려, 양보 같은 행복을 위한 여러 가치들을 학교와 우리 사회가 가르쳐야 해요. 그게 선진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출세, 성공, 돈은 행복의 필요 조건이 아닙니다.'

인터뷰= 김진각 선임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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