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존조건인 자연환경이 파괴되면 인간은 여지없이 공격을 받는다.
이른바 '환경의 역습'이다. 올해도 '녹조라떼'를 비롯해 적지 않은 사건들이 있었다. 특히 작년에 발생한 경북 구미 불산 누출사고는 1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자연생태계와 인간에게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사고 현장이 안정상태를 찾아가는 모습만 부각시킨 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외면하는 건 유감이다.
생태학자의 눈으로 본 사고 현장 주변의 자연생태계는 아직 많이 아파 보였고 우리의 도움도 필요해 보였다. 자연은 인간의 생존환경으로서 생활환경의 모태이다. 자연의 아픔을 읽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생태학자의 책무다. 현지를 방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번 사고의 원인물질인 불화수소(HF)의 수용액인 불화수소산(일명 불산)은 무색의 자극성 액체로 공기 중에서 발연한다. 침투성이 강해 금과 백금을 제외한 대부분의 금속과 유리를 침해하여 깎아낼 수 있다. 또한 동물의 피부나 점막, 식물의 잎 표면에 침투하여 강한 피해를 야기 시킬 수 있다. 그 발생원은 다르지만 같은 종류의 대기오염물질이 구미 공단 주변의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유사한 피해가 우려되는 것이다.
대기오염에 강한 식물로 알려져 도시의 가로수로 많이 심어진 은행나무이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 곳의 은행나무들은 피해가 아주 컸다. 한 가정에서 생울타리로 도입한 스트로브잣나무는 침엽의 대부분이 피해를 입어 고사 직전이었다. 전형적으로 마을 가까이에서 숲을 이루는 상수리나무는 잎의 색이 변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모양도 심하게 변해 있었다. 대기오염에 강한 특성을 갖고 있는 갈참나무는 이곳에서도 잎의 모양이 다소 일그러지기는 하였지만 변색이나 괴사는 심하지 않아 내성이 강한 종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키가 작아 큰 나무에 가려 대기오염 물질의 직접적인 영향을 더 적게 받았겠지만. 참싸리 청미래덩굴의 잎도 괴사현상을 보였다. 강한 대기오염으로 인해 식생이 심하게 파괴된 울산과 여천 공단 주변의 산지를 온통 뒤덮고 있는 억새 잎도 심하게 변색되어 이 지역에서 불소 피해가 매우 컸음을 입증했다.
산을 떠나 마을로 내려와서도 식물의 피해 모습은 계속 이어졌다. 마을 주변에 자라고 있는 오동나무는 잎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오랫동안 이 마을을 지켜 온 왕버들의 잎도 심하게 괴사되어 있다. 마을 단장을 위해 화목으로 도입된 무궁화와 배롱나무는 피해를 입어 그 절반이 고사상태다. 외래종으로서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가중나무도 불소 피해를 피해가지 못하고 잎이 변색되어 있었다.
사고지역과 가까운 곳만 아니라 먼 산의 소나무 숲에서도 갈색이 진해지고 있었다. 실제로 불소가스는 공기보다 가벼워 발생원으로부터 30km 나 떨어진 식물에게도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밀한 재조사와 그 결과에 토대를 둔 신중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싶다.
최근의 연구 결과는 식물이 함유한 칼슘 및 마그네슘 함량이 많으면 불소를 불활성화시켜 식물의 피해를 막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유리된 불소가 식물 잎의 괴사를 유발한다고 설명한다. 인도 불소 피해를 줄이는데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결과를 적용하여 지난해 사고로 피해를 입은 산림생태계에 칼슘과 마그네슘이 함유된 돌로마이트와 인산 비료를 공급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 내성종인 갈참나무나 떡갈나무를 도입하여 고사목이 발생한 공간을 채우고, 피해 입은 숲 가장자리 역시 때죽나무, 보리수나무, 청미래덩굴, 새 등 내성종을 도입하여 보호식재를 하면 피해 입은 숲이 안정된 모습을 되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하면 자연은 생태계서비스 기능을 발휘하여 우리에게 혜택을 돌려줄 것이다. 작은 노력으로 큰 성과를 거두는 생태적 복원이 절실한 현장이다.
이창석 서울여대 생명ㆍ환경공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