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총리와 그가 속한 자민당은 지난해 12월 16일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국을 자극하는 공약을 남발했다.
당시 자민당의 공약집에는 시마네현이 매년 2월 22일 개최하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 행사를 국가 행사로 격상하고 총리실 산하에 독도 등 영토문제대책본부를 신설하며 독도 연구기관을 설치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교과서검정제도의 근린제국조항을 수정, 일본의 '침략'을 '진출'로 표기할 수 있는 근거도 만들었다. 당시 당 총재였던 아베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사죄한 고노 담화와, 역대 정부의 과거사 반성을 담은 무라야마 담화도 수정하겠다고 밝혀 순탄치 않을 한일 관계를 예고했다.
아베는 집권 이후 다케시마의 날 격상을 보류하면서도 시마네현 출신 의원들만 참석하던 이 행사에 차관급 인사를 파견, 사실상 국가 행사로 치르게 하는 등 정치 고수다운 꼼수를 보였다. 자신을 지지하는 우익 세력을 의식해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침략과 식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등 왜곡된 역사 인식을 보여주었다. 자신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으면서 장관들의 참배는 막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사죄하는 듯하면서도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부인하는 등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그의 이런 모습에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베의 역사 인식을 문제 삼으며 미국, 중국, 영국 등 해외 순방 중 만난 국가 정상들에게 "역사에 대한 반성 없이는 정상회담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의 친 아베 성향 보수 언론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직접 만나서 할 것이지 뒷담화를 하느냐"며 박 대통령을 때렸다. 일부 보수 잡지와 우익단체는 일본 내 반한 감정을 조장하는 자극적 기사와 발언을 쏟아냈다.
이에 미국에서 한일 갈등에 대한 우려가 나왔고 조 바이든 부통령은 이달 초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를 차례로 만나 양국 관계 개선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아베 역시 일본에서 열린 한일의원연맹 총회에 참석해 협력을 강조함으로써 양국 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였다. 이와 관련,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총리를 만나 역사인식과 관련한 역대 내각의 담화를 계승한다는 약속을 받아낼 필요가 있다"며 "그렇게 되면 아베 총리도 더 이상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발언이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미야 교수의 기대와 달리 한국에는 정상회담의 분위기가 아직 무르익지 않은 상태다. 아베의 역사 왜곡과 우익 행보에 대한 한국 내 여론이 여전히 냉랭하기 때문이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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