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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12월 17일] 노랑과 파랑으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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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12월 17일] 노랑과 파랑으로 보는 세상

입력
2013.12.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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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친구의 약혼녀를 사랑한 괴테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귀족사회에 대한 회의에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젊은이의 혼란스럽고 격정적 내면을 다룬 소설이다. 여기서 베르테르가 자살에 이르고 매장되는 순간까지 입었던 옷은 노란색 조끼와 푸른 연미복이다.

괴테는 왜 베르테르에게 노랑과 파랑의 옷을 입혔을까. 색채학자로서 괴테가 강조해왔던 근원적인 색도 노랑과 파랑이다. 그의 노랑은 항상 빛을 수반하고 파랑은 어둠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노랑에서 파랑으로 이어지는 색의 스펙트럼으로 세상을 본다. 어쩌면 노랑은 시작이고 파랑이 끝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색상환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어, 노랑이 먼저인지 파랑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

괴테가 섬세하게 그려낸 베르테르의 여리면서도 격정적인 내면세계의 풍경은 이러한 노랑과 파랑의 공존으로 감정의 증폭을 시각화한다. 베르테르의 사랑은 어쩌면 누구나가 열병처럼 겪어 봤음직한, 첫사랑의 숨 막히게 아름답던 금빛 물결인지도 모른다. 또한 현실의 벽을 만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좌절해야 했던, 좀처럼 헤어나기 어려웠던 푸른 심연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행복이 되는 것이 또한 인간의 불행의 근원이 되리라는 것은 도무지 피할 수 없는 것일까."베르테르의 이야기처럼 모든 것은 인연의 고리처럼 순환을 한다. 만약 노랑이 행복이고 파랑이 불행이라면 노랑은 파랑을 낳고 파랑은 노랑을 낳는다. 색채학적으로 그 둘은 서로 동시에는 지각될 수 없는 절대적인 반대색일 뿐이다.

노랑과 파랑은 빠르거나 천천히, 그 어느 쪽으로든 순환한다. 그러나 그 방향을 잃는 순간, 나약한 인간은 그 노랑과 파랑의 순환의 고리를 놓아버린다. 괴테는 베르테르의 옷을 통해, 가장 근원적인 색으로서 근원적인 감정을 나열하고 그 사이에서의 갈등을 대비시켰다. 노랑과 파랑이라는 감정의 양극에서 떨고 있는 반 고흐의 처럼 말이다.

반 고흐는 그 어두운 들판에 서성이다 스스로 가슴에 총을 쏜다. 그리고 간신히 몸을 이끌고 여관으로 돌아와 이틀 후 동생 테오의 품에 안겨 죽는다. 죽음에 이르던 그의 머릿속엔 자살하기 며칠 전에 그렸던 의 인상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성난 검푸른 하늘과 일렁이는 황금빛 밀밭이 주는 풍경 말이다.

고흐는 노랑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 , , , , , , 등 남부 프랑스의 햇빛 아래에서 고흐는 노랑으로 꿈을 꾸었다. 그가 간절하게 빛나는 노랑을 칠하는 동안 그의 내면에는 푸른 고독도 깊어갔다.

그의 강렬한 노랑은 검푸른 하늘이 대비를 주는 에서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요동치는 심장처럼 격정적인 붓 터치로 그린 푸른 하늘과 황금빛 밀밭은 극한의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것은 고독을 벗어난 노랑도, 희망을 그리워하던 파랑도 아니었다. 세 개의 갈림길을 그려 놓았듯,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자신을 놔버리는 것이었다.

노랑과 파랑으로 바라 본 세상이다. 삶은 그렇다. 노랑의 빛도 있고 파랑의 그늘도 있다. 격하게 몰려오는 감정의 끝에서 어느 것이 나의 모습인지 흔들리기도 한다.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안타까운 기로에 놓이기도 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는 천천히, 또 다른 누군가에는 빠르게도 오고 간다. 그리고 계속 순환한다.

세밑이다. 혹시 방황하는 사랑이 있는지, 길 잃고 헤매는 고독이 있지 따스한 눈길이 필요하다. 노랑이 볕이고 파랑이 그늘이라면, 세상을 노랑과 파랑으로 바라본다면, 고난 뒤에 희망이, 희망 뒤에 고난이 있을 수 있기에 용기와 격려와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다 보듬고 둥글게 껴안고 가는, 노랑과 파랑이 공존하는, 사람을 살피는 세밑이 길 바란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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