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현지시간) 실시된 칠레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중도좌파 후보 미첼 바첼레트(62)가 예상대로 압승했다. 2006~2010년 대통령을 역임했던 바첼레트는 재선에 성공했고 칠레 좌파는 4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공교육 개혁 등 아우구스트 피노체트 군부독재(1973~1990)의 유산 청산 요구를 충족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바첼레트 정부는 내년 3월 11일 집권 2기를 시작한다.
개표 결과 바첼레트는 62%를 득표, 37%에 그친 집권 우파연합 후보 에벨린 마테이(60)를 눌렀다. 지난달 1차 투표에서 47%를 얻어 2위 마테이(25%)와 결선에 올랐던 바첼레트는 칠레 대선이 직선제로 치러진 지 80년 만에 가장 큰 득표율 차로 승리했다. 직선제로 당선된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이어 칠레 첫 재선 대통령이라는 이력도 보탰다.
바첼레트는 당선이 확정된 16일 수도 산티아고에서 “내가 여기 서있는 것은 국민들이 ‘모두를 위한 칠레’가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며 “쉽지 않겠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은 늘 쉽지 않았다”며 개혁 의지를 재차 밝혔다.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어릴 적 친구였던 바첼레트와 악연을 맺게 된 사연으로도 화제를 모았던 마테이는 패배를 시인하면서 “바첼레트와 나중에 사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이 이끄는 우파 정부의 지지율 폭락으로 바첼레트의 낙승은 일찌감치 예상됐다. 피녜라는 2010년 취임 직전 발생해 200만명의 피해자를 낳은 대지진의 여파를 수습하고 집권 내내 안정적 경제성장을 이어갔지만 부실한 공교육, 빈부격차 등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민심을 잃었다. 바첼레트는 퇴임 당시 지지율이 80%를 상회했던 높은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법인세 인상을 통한 공교육 투자 확대, 피노체트 집권기에 제정돼 정치ㆍ경제 개혁을 가로막는 현행 헌법의 개정, 건강보험 개혁을 포함한 빈부격차 해소 등을 공약으로 걸었다. 바첼레트를 대선 후보로 내세운 중도좌파연합 누에바 마요리아(새로운 다수)가 지난달 대선 1차투표와 함께 치러진 총선에서 상하원 모두 과반을 차지해 공약 이행 여건도 마련됐다.
바첼레트 집권 2기는 그러나 난관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2015년까지 현행 20%인 법인세율을 25%로 올리겠다는 공약은 재계의 반발을 사고 있고, 개헌에 필요한 5분의 3 이상 의석까지는 확보하지 못했다. 현재 성장률의 2배인 연 6% 경제성장 공약도 실현가능성이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트리시오 나비아 뉴욕대 교수는 “좌파 재집권으로 한껏 부푼 유권자의 기대와 현실의 차이가 바첼레트가 직면한 최대 난제”라고 분석했다. 알베르토 마욜 칠레대 교수는 “교육제도를 비롯해 칠레 사회의 변화 욕구는 바첼레트의 첫 임기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고 진단했다. 이번 결선 투표율이 41%에 머물렀다는 점도 새 정부에 부담이다. 바첼레트가 얻은 표수는 군부독재 이후 민선 대통령 중 가장 적어서 개혁 동력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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