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의 국가 슬로건은 '사뚜 말레이시아(하나의 말레이시아)'다. 원주민을 비롯한 말레이계와 중국 화교, 인도계가 각각 6대 3대 1 정도인 이 나라에는 세계의 종교가 혼재한다. 총리 산하에 1969년 설치된 국가통합부는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라는 구조적 복잡성에 정체성 모색과 평화공존 추구로 잘 대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나라에서 인류 공영과 지속 가능한 평화 실현을 논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5~8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글로벌피스재단(이하 GPF) 2013년 연차총회의 주제는 '다양성 속의 통합(Unity in Diversity)'이었다. 40여 개 국 참가자 400여 명은 초종교적 연대와 여성리더십, 가정과 지역공동체 개발, 언론 윤리 등을 주제로 실천방안을 논의했다. 이미 단체로 결성된 '남미의 전직 대통령ㆍ총리 그룹'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유엔총회를 방불케 했다.
총회에서 채택된 강령이나 결의 가운데 단연 주목되는 것은 '유엔에 초종교 평화이사회를 만들자'는 GPF 설립자 문현진 의장의 제안이었다. 취지는 다음과 같다. 유사 이래 인류에게 가장 위험하고 잔인한 갈등은 종교 간의 갈등이다, 종교적 열정에 대량 학살무기가 더해진 지금은 국제적 종교전쟁의 위험성이 크다. 대화와 상호 인정을 넘어 실천하는 초종교적 운동이 필요하다, 냉전시대 양극체제의 산물인 유엔의 기존 기구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러니 새로운 기구를 만들자.
사실 신앙을 중심으로 갈등구조가 고착돼가는 종교의 문제에 대해 유엔은 무력하다. 유엔은 균형과 현상 유지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새뮈얼 헌팅톤이 지적한 대로 종교적 갈등은 갈수록 커지는데 이 문제를 다룰 구조와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실현을 추구할 만한 제안이다.
그는 항구적 평화와 공영을 위한 구호로 '신 아래 한 가족(One family under God)'을 내세우고 있다. 모든 종교는 평화를 지향한다. 여기에서의 신이란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라 각 종교가 내세우는 영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초종교적 운동의 이념으로는 '홍익인간'을 내세우고 있다. 전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우리 고유의 비전이라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 자신을 돌아본다. 1990년대 초반 세계화를 내세운 이래 우리는 개방과 문화적 종교적 수용을 외쳐왔지만, 괄목할 진척은 없는 것 같다. 다문화가족이라는 개념은 그들을 포용하기보다 오히려 차별하는 기제로 작동되는 측면이 있다. 우리는 변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우리로 만들려 하니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우리들 내부에 있다. 관용(寬容)의 바탕이 희박한 채 강고한 이념과 진영논리에 매몰돼 정치발전과 사회통합을 기약하기 어렵다. 대동(大同)의 정신이 아쉽다, 장자가 한 이 말은 크게 보면 같지만 작게 보면 다르다는 뜻이다. 대동은 기르고 소이(小異)는 가꾸어 관용과 화합으로 성숙한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돼야 한다.
18~19세기 조선의 선비들은 청이라는 나라의 지식인과 문명에 대해 다른 지역에 살고 있지만 동시대의 사람과 문명이라는, 이른바 병세의식(幷世意識)을 갖고 있었다. 당시 청나라는 그들에게 세계의 중심이자 세계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병(幷)은 아우르다, 어울리다, 합하다라는 뜻의 아주 좋은 말이다. 세계인과 함께라는 병세의식, 나와 다른 것을 소중히 하는 대동의 자세로 내실을 다져가야 한다.
민족의 과제인 통일은 무엇 때문에 해야 하나. '하나의 한국'이 되는 것은 군사력 경제력보다 문화와 정신의 힘으로 세계에 기여하는 나라, 모든 나라가 인정하고 존경하는 이상적 통일국가를 만드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말레이시아에서 다시 새긴 바람이자 믿음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